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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26]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26]

En Hakkore 2024. 6. 19. 11:29

광야에서(출애굽기 15장).

광야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여행자의 장소이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을 빼놓고서 누구도 거기에다 집을 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정확히 이 세상은 그와 같은 곳이다.

그곳은 인간이 현재로부터 영원을 향하여 통과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믿음은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거의 모두가 여기에 머무는 것에 대해 만족한다. 그는 마치 여기에서 영원히 거할 것처럼 정착한다.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시 49:11).

그는 지상의 체류를 연기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기에, 마지막에 죽음이 그를 요구하면, 떠나가기를 싫어한다. 이는 믿는 자, 참된 신자와는 아주 다르다. 그의 집은 여기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본다"(히 11:10).

따라서 그는 여기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이다(히 11:3). '광야'가 말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신에게 주신 땅이었고, 광야는 다만 그들이 유업을 향하여 갈 때 통과하였던 낯선 땅일 뿐이다.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출 15:22).

이것은 우리의 광야 생활이 우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계회된 첫 번째 교훈이다. 여기 지상에는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생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전혀 없다. 죄의 즐거움과 세상의 매력은 결코 만족을 주지 않는다.😎

이전에 매력이 있던 것들은 이제 우리를 물리친다. 우리가 즐겨하곤 했던 교제도 이제 싫어지게 되었다. 불경건한 것을 즐거워했던 것으로 인하여 오히려 우리는 신음하게 된다.

주님과 교통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갈급한 영혼을 소생시킬 혹은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주위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에게 이 세상이 얕은 저수지는 말라버렸다. 그의 부르짖음은 시편 기자가 한 말씀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 63:1).

아, 여기에 신자의 근원이 있다. 즉 하나님만이 그의 마음의 소원을 만족케 하실 수 있다  신자는 구세주의 은혜로운 말씀, 즉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한 말씀에 먼저 유의하였듯이, 그는 그렇게 오직 생명의 물이 되신 주님에게로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출 15:23).

이것은 쓰라린 시련이요, 실제적 시험이었다. 물 한 모금도 찾을 수 없는 뜨거운 모래밭 광야를 삼일 간이나 여행하여 이제 그 물에 이르게 되었는데 '쓰다' 는 게 웬 말인가! "그렇다, 이것은 젊은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신자들에게도 얼마나 자주 생기는 일인가?

우리는 만족할 줄만 알고 붙잡은 것이 다만 쓰라린 실망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증명되지 않았던가? 당신은 이 세상의 즐거움, 부 또는 명예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이 쓴 것이지 않았던가?

당신이 즐거운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고 하자. 한때 이것이 매우 즐거운 것 같았지만 지금 새 피조물에게는 얼마나 쓴 맛이 되어 버렸는가! 얼마나 철저하게 실망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는가.

당신의 마음을 세속적인 대상에 고정시켜 보았나? 당신은 그것을 얻는 기회가 있었겠지만 그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나! 그렇다. 당신에게 만족을 줄 것 같았던 그런 것들은 슬픔과 허무를 가져다 줄 뿐이다"(C. Stanley).

이스라엘은 이제 광야의 황량함과 쓰라림을 느끼도록 되었다. 그들은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광야를 횡단할 여행을 시작했을까? 그들은 앞에 놓여 있는 일들에 대해서 거의 준비가 없었다.

삼 일 동안이나 가면서 물을 찾지 못하다가 겨우 찾은 것이 쓴 물일 줄이야! 그들이 하나님에게 얼마나 다르게 기대했는가! 그들을 이끌어 내시기 위하여 행한 구원의 위대한 일들을 체험한 다음에, 자신들에게 순조롭고 편안한 길을 하나님이 예비해 주시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어린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도 이와 같다. 그들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고 죄용서의 지식 안에서 즐거워했다. 그들은 앞에 놓여 있는 환난을 거의 예상하지 않았던가?

아, 우리들은 광야가 어떤 곳인지 알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았다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슬픔을 우리에게서 막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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