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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04]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04]

En Hakkore 2024. 6. 17. 22:10

유월절의 뒤따르는 것들(출애굽기 12, 13장)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나귀' 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면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이 많다. '나귀' 를 맨 처음 언급한 구절은 창세기 22장에 있는데 거기서 두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창 22:3)라고 하였다. 나귀는 자유로운 동물이 아니라 안정을 지우는 부담을 가진 짐승이다. 죄인들도 마찬가지로 '잡다한 욕망이 섬긴다.'  

둘째로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창 22:5)라고 하였다. '나귀' 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경배하는 장소에 동반되지 못했다.

셋째로 창세기 49:14에 이르시기를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꾾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라고 하셨다. 이것 또한 무거운 짐을 진(마 11:28) 죄인을 가리킨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소와 나귀를 함께 쟁기질을 하지 못하도록 명하셨다(신 22:10). 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그 문이 닫혀 있음을 의미한다.

다섯째로 사무엘상 9:3에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라고 했다. 사울과 그의 사환들이 오랫동안 나귀를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이와 같이 죄인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으므로 그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다시 찾을 수 없다.

여섯째로 예레미야 29:19에 이르시기를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고 하셨다. 이는 두렵고도 엄숙한 말씀이다.

나귀의 시체는 거룩한 성문 바깥으로 던져짐을 당했다. 그리스도 밖에서 죽는 모든 죄인들도 이와 같을 것이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고 '불못에 던짐' 을 당할 것이다.🎵

'나귀'에 대한 마지막 관주는 스가랴 9:9에 있다. 거기에 이르시기를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을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고 하셨다.

이는 참으로 복된 내조이다. 여기서 우리는 '나귀' 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주 예수의 손 아래 이끌림을 받고서만 그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에 죄인들의 유일한 소망이 있으니 이는 곧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것이다.🎵

창세기 16:12에 이 사실과 연관된 매우 적절한 말씀이 있기는 하지만 그 특정한 요점이 흠정역(A.V.)의  번역본에서는 빠져 있기 때문에 개정역(R.V.)에서 인용한다. 즉 개정역에는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주께서 사라에게 하신 것으로 이스마엘에 대한 예언이었다. 갈라디아서 4장에 보면 이스라엘은 자연적 인간을 대표하고, 이삭은 약속의 씨 곧 신자들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완전히 일치하게도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은 사라의 "장자" 에 대한 놀랄 만한 묘사였다. 즉 그는 들나귀 같은 사람이었다. 베드윈 아랍인들이 이스마엘의 후예로서, 전적으로 그들은 고대의 이러한 예언의 진리를 증명해 준다.

더욱이 여기서 자연적인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묘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보다 더 중대한 사실은 갈라디아서 4:29에서 보듯이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이며 그 결과로 그가 "쫓겨 났다"(갈 4:30)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사실들을 돌아볼 때 '나귀의 초태생'에 대한 구속이 제공되어 있음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신분을 갖는가? '나귀'가 당신의 모습 그대로를 명백히 묘사한 것, 즉 부정하고 우둔하며 옹고집이어서 목이 꺾이기에 꼭 알맞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바울 사도의 말이 당신의 진정한 심령의 형편을 알맞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하였다.

또 당신은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라고 말한 자기 의(self righteous)로 가득한 바리새인과 같지 아니한가?

그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눅 19:10) 오셨다. 또다시 묻지만 당신은 하나님 이러한 신분을 택했는가? 당신은 그 모든 어찌할 수 없는 일들 곧 타락, 부패, 범죄와 유기된 자신의 것들을 가지고 그에게 나아왔는가?

당신은 무가치한 주장과 행한 공적들을 모두 버리고 그의 분에 넘치는 자비하심에 자신의 마음을 쏟았는가? 당신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죄인의 구주를 발견하고 감사함으로 그를 영접하였는가?

만일 그렇게 했다면 기꺼이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나귀' 라는 말은 본질상으로 이전에 당신이 그러했고 또 지금도 그러한 사실을 적절히 표현한 것을 시인하는가?

그렇다면 또한 당신을 구속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임"(벧전 1:19)에 대한 비길 데 없는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겠는가?

'나귀'를 향하여 '양' 을 마련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우리가 이 상징의 정확성을 더 잘 알면 알수록 우리 자신이 얼마나 나귀 같은지 더 잘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온전하신 구속의 어린양에 대하여 더 깊은 감사와 더 뜨거운 찬양을 올리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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