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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06]

En Hakkore 2024. 6. 18. 11:16

출애굽(12-14장)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출 13:19).

이것은 조상이나 유물의 숭배가 아니라 믿음의 행위요, 요셉이 믿음으로 견고하게 붙들었던 약속,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 땅이 이스라엘의 목적지라고 말한 요셉의 믿음에 관한 선포였다.

그들이 애굽에서 얽매여 있었던 긴 세월 동안 요셉이 '그의 해골' 에 관하여 내린 명령은 많은 히브리 사람들 가운데서 때때로 화젯거리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제 방부 처리하여 보관되어 왔던 유해를 취하면서, 모세는 약속의 땅에 그것을 묻을 땅이 있을 것이라는 그 확실한 신념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신념이 잘못된 근거에 둔 것이 아니었기에, 여호수아 24:32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11:22은 요셉이 말했던 이 명령은 '믿음으로' 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수 백년의 세월이 지나간 후, 우리들은 주님의 종의 믿음에 관한 하나님의 응답을 본다.🎵

모세는 이 당시에 마음을 차지하는 일들이 대단히 많았다. 그가 막대한 임무 중에서도 착수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 군대'를 조직하여 순서대로 정렬하여 이끌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단순히 의존적 상태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임종 때의 희망을 가졌기에, 그가 낙심했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모세의 마음에 이 요셉의 명령을 떠오르게 하셨고 그로 하여금 그것을 실천하도록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복된 증거였다.🎵

그러나 바라건데, 이런 사실 속에서 우리를 위한 상징적 교훈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출애굽 하는 것에 대한 상세한 설명들은, 그 앞에 선행하는 것이나 뒤에 따르는 것이나, 우리를 위해 충분한 중요성과 영적 타당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한 땅을 향하여 광야를 가르지르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요셉의 뼈를 그들이 함께 가지고 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예시하는 것인가! 만일 우리가 요셉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다면 그 대답을 알아내기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고린도후서 4:10에 보면 그 사실에 대한 신약성경의 해석이 나와 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 하셨다. 그것은 언제나 현실의 안일과 쾌락만 추구하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육신에 가해진 십자가의 능력이다.🎵

예수의 생명(새 본성)이 우리에 의해 분명하게 증거되는 것은 오직 육신을 '통제함'에 의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출 12:37).

라암셋이란 '태양의 아들' 이라는 뜻이다. 그곳은 노예가 된 이스라엘인이 애굽인을 위하여 건축을 진척시켰던 요새였다. 그 이름은 위대한 왕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는데, 지금 그 왕의 유골은 미라로 보관되어 영국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라암셋은 이스라엘을 너무도 잔인하게 압제한 바로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적하다가 홍해에 빠져 죽은 바로의 아버지였다. 그는 위대한 전사로서, 에디오피아와 다른 땅들을 정복하였다.

상징적으로, 라암셋은 '지금의 이러한 악한 세계'와 같은 그런 조직을 말하는데, 그곳의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이끌어 내고, 그곳의 위에서 타락한 힘센 천사인 사탄은 군주로서 군림한다.

"그래서 여기 그들의 여행 시초부터 이상하고도 기이한 비유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누구든지 천문학의 기초를 터득한 사람이라면 인식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땅으로 여행하기 위하여 '태양의 아들' 의 땅을 벗어나도록 부르심을 입었듯이,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는 전도서에서 '해 아래' 라고 묘사한 그런 영역(그 안에서 행성들[방랑자들]이 태양 주위를 끊임없이 회전하면서 이동하는 이러한 모든 왕국)을 벗어나서 미지의 영역으로 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미지의 영역 중에서 우리에게 보이는 것도 그 움직임을 전혀 간파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상 못할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항성(fixed stars)이라고 부른다.

그 항성들은 태양계의 방랑자들(그 중에서 우리의 지구도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그 어디엔가 도달할 수 없는 통로 속에 있는 일종의 가련한 휴식이 없는 방랑자임)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는 그 어떤 일에 의해서 평정을 잃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 조용한 부동의 하늘들 중의 하늘로서 매일 밤 우리를 비추고 있다.

솔로몬은 '해 아래'에 있는 우리의 모든 삶, 쾌락, 염려, 수고, 즐거움, 그리고 그 슬픔들을 끊임없이 '헛됨과 괴로운 수고' 로 묘사한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입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전 1:9).

"바울이 '셋째 하늘'(고후 12:2)이라고 부른 것은 우리들 행성계의 어떤 영향을 완전히 넘어선 자유스러운 낙원을 말하는 것으로 신자들이 가는 곳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이 세워지기 이전에 택함을 받았으며, 모든 인간의 야망과 책략, 철학, 종교를 훨씬 넘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영원한 영역에 속한다(엡 1:4-10).😎

"그러한 부르심은 신비스러운 것이다. 바울이 우리에게 그 일을 설명하려는 현장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에게 주어져서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것을 알 수 있게'(엡 1:18) 하도록 간절히 기도를 올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C. H. Bright).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숙곳(Succoth)이란 말은 '오두막집' 또는 '장막'이다. 이는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여행의 순례적 성격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첫 순례에 의하여 배운 위대한 교훈 중의 하나였다.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히 13:14)라고 성경은 말하였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며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 11:9)라고 했기 때문이다.

오두막집은 우리가 여기 아래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니, 이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빌 3:20)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시적 '장막'을 아버지 집의 영원한 '처소'(맨션)로 바꿀 때가 이제 매우 가까왔으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자.🎵

Arthur W. Pink 출애굽기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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