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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97]

En Hakkore 2024. 6. 17. 22:06

유월절 2(출애굽기 12장).

14.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를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출 12:22).

이것은 비록 그 모양이 원어의 '그릇'(basin)이란 말의 해석으로 인하여 흠이 생기기는 했어도, 우리의 복 되신 주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고난에 대한 놀라운 상징적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우르카르트(Urquhart ) 박사의 학문적 도움을 입어야 하겠다.

여기 '그릇'(basin)으로 번역된 말은 옛날 사람들의 문 앞의 계단 또는 집의 문지방의 뜻을 가진 sap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사사기 19:27에서는 '문지방'으로 번역되었고, 열왕기하 12:9에는 '문'으로 되었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말은 이 구절에서 사전 편집자나 번역자에 의하여 '그릇' 이라는 의미로 표기할 단 한 가지의 이유도 없었고...피를 문지방에 두라는 아무런 지시도 없었으니, 그 이유는 피가 이미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양은 그 피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은 그 집의 문에서 죽인 것이 분명하다. 70인역에서는 'para ten thuran' 이라고 기록하였는데 그 뜻은 '문간에서'(along the door - way)이다! 뿐만 아니라 불가타역에서는 'in sanguine qui est limine' - '문지방에 있는 피에'로 되어 있다.

이 관점은 단지 학술적 관심만이 아니라 모형의 정확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안에서 보호를 받은 그 문은 인방(가로지기)과 설주와 계단에는 피가 발라져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문지방에 있는 피를 넘는 일은 여호와의 지시에 의하여 미연에 방지되었다.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출 12:22).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얼마나 놀랍게 그려주고 있는가! 위에 있는 피는 가시가 이마를 찔렀음을, 옆에 있는 피는 못이 뚫고 들어간 양쪽 손에 피를, 아래에 있는 피는 양쪽 발에 못이 뚫고 들어간 것을 말한다.

15. 피는 '우슬초 묶음' 으로 발라야 했다(출 12:22).

말씀 가운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가장 세미한 것도 적절한 중요성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추측하여 헤아리도록 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성경 자체에 모든 해석이 있기 때문이다.

'우슬초'(hyssop)는 양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양의 피를 바르는데 이용되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죄인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다.

'우슬초'는 친히 주 예수를 예시하는 그 어떤 희생제물과도 연관된 것을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한결같은 죄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는 레위기 14장의 나병의 깨끗하게 하심과 연관되어 있으며, 민수기 19장의 부정을 제하는 일에도 연관되어 있다.

시편 51:7에 보면 '우슬초' 가 겸손의 정신, 뉘우침, 회개를 말하고 있음을 배울 수 있다.🎵 열왕기상 4:33에서 '우슬초'가 '백향목'과 대조되고 있음은 '우슬초'가 천시되는 풀임을 보여준다.

유월절 뒤에 이어지는 무교절에 대하여 몇 마디 첨가해야 하겠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끓어지리니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 (17-20절).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고린도전서 5:7, 8에서 제공해 주고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therefore)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therefore)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위의 말씀에 대하여 매킨토시(C. H. Mackintosh)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이 구절이 말하는 절기는 무교절과 해당되는 것으로서 교회의 생활과 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칠일 간 계속되었고(시간의 완전한 한 주기), 그 기간에 속한 날 동안에는 또는 전 기간을 통하여 교회는 집단적으로 그리고 신자는 개인적으로 실제로 거룩하게 행하도록 요구된다. 그런데 이것은 더욱이 피로 씻음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그 직접적 결과로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받기 위하여 누룩을 제한 것이 아니라 그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넣게 한 것이다. 만일 누룩을 제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피로 인한 안전에 관한 문제는 아니요 다만 회중과의 교제에 관한 문제이었다.

어떤 이스라엘 백성이 회중으로부터 탈퇴당하는 것은 주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두절한 것 때문이고, 신성한 현존의 거룩성에 대치되는 행동에 빠져 있기 때문지다.

하나님은 악을 묵과하실 수 없으시다. 단 한 가지의 경건치 못한 생각(품었던)마저도 영혼의 교제를 방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런 생각에 의하여 습관이 붙은 그 오점이 자백(그리스도의 변호 위에 근거한)에 의해 제거되기까지, 그 교제는 회복이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요일 1:5-10 참조).

주께서 그의 놀라우신 말씀을 더욱 부지런하게 그리고 기도로써 연구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를 바란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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