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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78]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78]

En Hakkore 2024. 6. 16. 10:01

장자의 죽음(출애굽기 11장).

바로와 여호와 사이의 경쟁은 거의 끝났다. 바로 왕에게 자신의 악한 반항적 태도를 회개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경고에 경고를, 그리고 재앙에 또 재앙을 내렸으나 애굽의 지배자는 계속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

그 재앙들 중에서 제일 무거운 것 한 가지가 더 작정되었는데 이것 때문에 바로는 백성들이 가도록 '허락'을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쫓아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고, 여호와를 대적하는 일의 무용함이 온전히 드러나게 될 것이며, 피조물의 무능성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전능하심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그것을 돌이키랴"(사 14:27).♡

비록 바로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제국의 왕이라 할지라도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단 4:37)고 하였다. 바로는 오만한 태도로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고 물었다.

그는 뻔뻔스럽게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 5:2)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기꺼이 제거해 버릴 때가 거의 당도했기에, 하나님은 그와 그의 땅에 매우 격렬한 고통을 주었다.

피조물이 전능자를 용케 무시하는 것은 마치 벌레가 코끼리의 발걸음을 저지하려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강퍅한 마음을 갈아 가루를 만들 수 있고 심히 오만한 영혼을 끌어내려 진토에 붙일 수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쫓아내리니"(출 11:1).

'재앙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것은 이것, 즉 "그 기력의 시작"(시 78:51)을 향한 것이었다. 바로보다 더 능한 왕이 그날 밤 애굽을 방문하고자 했다.

'공포의 왕' 이 그의 엄위하신 손을 장자 위에 덮으려  한 것이다. 모든 지혜와 학문마저도 바로와 그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술객들도 그러한 비상사태에는 쓸모가 없었다.

죽음의 사자 앞에 버틸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부귀나 과학도 구원을 제공할 수 없었다. 궁궐에 거하는 자도, 천한 오두막에 사는 사람보다 조금도 더 안전하지 못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충분히 나타내 보이셨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가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폭발하여, 그 결과로 초래된 통곡이 널리 사무치게 될 것이다.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출 11:2).

이 구절과 그 다음 구절은 삽입절로 간주된다. 장자가 죽임을 당한 그 밤은 니산월의 열나흘과 열닷새날 사이에 있었다. 그럼에도 출애굽기 12:3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달의 열흘째 날에 각 남자마다 양을 한 마리씩 잡으라고 이스라엘에게 지시하셨음을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여기 출애굽기 11장의 대부분은 유월절 밤에 발생했던 일과 관계가 있고, 2절과 3절은 이 일에 앞서 이미 일어났었던 일에 대해 간결하게 보고하는 삽입절로 나타난다.

2절에 기륵된 내용은 하나님의 진리의 대적자들에게 포착되어서 윤리적 반대의 근거가 되었다. '빌리다'(borrow: 한글 성경은 '구하다')라는 말은 그 물품을 뒤에 돌려주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보물' 들을 애굽 사람들에게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기만과 정직하지 못한 일을 행하도록 가르쳤다고 언쟁했다.

그러나 그러한 반대의 모든 근거는 여기에 번역되어진 '빌리다' 라는 히브리 말이 정확하게 전해졌다면 말끔히 제거되었을 것이다. 그 말의 원어는 히브리어로 샤알(Sha' al)이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168번 나와 있으며 162번이 '구하다, 빌리다 또는 요구하다' 로 번역되었다.

70인역에는 아이테스(aites; sak)로 되어 있고, 제롬의 라틴어 역본에는 포스투라비트(postulabit;sak, request)으로 되어 있다.

그 실수는 '빌리다' 라는 말 대신에 '구하다' 라고 대체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사기 거래의 죄가 있었다는 불신앙인들의 반대에 대한 그 모든 근거가 제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남아 있다.

왜 주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원수로부터 무엇을 '구하라' 고 명해야만 했는가? 애굽 사람들로부터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그들 자신의 것을 취하는 것이다. 긴 세월 동안 히브리인들은 벽돌 가마에서 고생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그들이 구하는 것은 그동안 충분히 벌어 두었던 것이다. 이 보물들을 받는다는 것은 적법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진지하고 만족할 만한 대답이 이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은 심오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세상은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중생하지 못한 자들에 의해 실행되는 아주 많은 자선사업은 이들의 결과물이다.

우리들의 자선 단체, 구제대책을 위한 기관들은 기독교의 소산물들이다. 병원과 구빈원(poor- houses)은 복음의 빛이 비추어지지 않은 땅에서는 알려져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주님이 그의 백성들을 이끌어 내셨을 때, 그 거민들은 결과적으로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그의 성도들을 들어올리실 때 아마도 세상은 모두 참된 축복과 깨달음이 떠났음을 아마도 느끼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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