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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79]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79]

En Hakkore 2024. 6. 16. 10:01

장자의 죽음(출애굽기 11장).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출 11:3).

이것은 여호와께서 불붙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하신,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출 3:21)라고 하신 약속의 성취였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사백 년 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4)고 하신 약속의 성취였다.

이는 참으로 복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오랜 세월 동안 히브리인들이 노예민족으로 살아왔으며 벽돌가마에서 고생하고 있는 동안, '위대한 신적인 힘으로' 애굽을 떠나리라는 것에 대하여는 어떤 외부적 표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보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였다. 옛날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에게 하신 모든 약속들이 선하게 이루어지리라는 확실성은 얼마나 잘 나타내 주는가?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출 11:3).

여기에서 여호와는 그의 절대적 주권을 나타내셨다. 자연적 견지로서 볼 때 애굽인들은 어느 때보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미워할 온갖 이유가 있었다.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창 46:34)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들은 목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그들과 그 땅에 혹독한 재앙을 내리신 이가 히브리인의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오직 달려 있는 것으로,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바야흐로 당신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도록 했다.

이와 비슷한 예들이 요셉과 보디발(창 39:3), 요셉과 전옥(창 39:21), 다니엘과 환관장(단 1:9)등에도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구절로부터, 우리들이 중생치 못한 자들의 손에서 친절함을 받게 하실 때,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눈에 은혜를 받도록 베푸신 것임을 알자.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출 11:4).

모세는 여전히 궁궐에 있었다. 출애굽기 11:1, 4절은 10:28, 29절에 이어서 계속 읽어야 한다.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라고  기록된 출애굽기 11:1(히브리어 성경에서 충분히 보여주듯이)을 읽노라면 두 장 사이에 있는 듯한 간격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애굽 땅을 뒤덮은 '캄캄한 흑암'으로 인하여 왕과 궁궐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종을 비록 볼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는 그때까지 바로의 궁궐에 있었다.

이에 대한 증거를 더 원한다면 이 장의 8절에서, "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따르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하고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오니라"고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니산(Nisan)의 열 나흘째 날은 다가왔고 최후의 통첩을 전한 다음, 모세는 영영 바로의 궁궐은 떠났다.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11:4-6).

이것은 로마서 11:22의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고 하신 엄숙한 말씀을 우리에게 얼마나 잘 상기시켜 주는가!

그의 친 백성을 이 중한 심판으로부터 제외하신 것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볼 수 있고, 애굽 사람들의 모든 장자를 죽이심에서 우리는 그의 '준엄하심'을 본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장자' 가 죽어야만 했는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서 적어도 두 가지의 대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적 태도에 있어 아비의 죄가 자녀들에게 머무는 일은 보통 일어난다. 그 다음으로는 로마서 9:22에서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진노의 그릇'을 예비하셨다고 했다.

그들의 부모보다 자녀들이 오히려 죽음을 당한다는 것은 이 사실을 보다 분명히 나타내 준다. 다시 말해서 장자의 죽음은 대표적 형벌의 표현이었다. 이는 자연적 인간들 모두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해 주는데, 초태생은 마치 '첫 열매'와 마찬가지로 나머지 모든 것들의 본보기이다.

그러나 바로만 거역하고 거만했는데 왜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해야 했는가? 그 대답은 출애굽기 14:7을 보면 확실하다. 즉 애굽인들의 모든 구성원들이 결백함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140

ps.  서두 부분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복에 대해 아래 내용처럼 말한 부분을 수정하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축복받은 것이다" -> "이는 참으로 복을 받은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사역자 포함)이 축복이란 단어를 은연중에 쓰기를 즐겨합니다. '빌' 축 자를 쓴 '축복'이란 용어는 사람들이 쓰는 용어이지 거룩하신 하나님께 쓰는 용어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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