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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40]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40]

En Hakkore 2024. 6. 13. 10:53

바로 앞에 선 모세와 아론(출애굽기 5장)

하나님께서 어느 민족을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먼저 다루지 않고 심판한 적이 있었는가? 국가적 심판은 그 국가의 본질이 드러난 눈에 띄는 몇몇 범죄에 의거하여 진행되었다.

칼라일(Carlyle)은 프랑스 혁명에서 성직자와 귀족들에게 내려진 끔찍한 충격을 성 바돌로매 대학살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 조사한다. 프랑스는 마치 애굽이 이스라엘을 압도하려고 시도한 것 같이 종교개혁을 압도하려고 시도했다.

스페인은 종교재판소를 세워서, 눈에 잘 띄는 주로 명백한 추문들을 교회에서 제거하기를 원했던 국민들에 대하여 잔인한 싸움을 벌임으로써 그 위대성과 명성에 무덤을 팠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요청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찾기 위하여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그 요구는 사실상 제한적이었다. 그런 요청을 받는 것은 겉으로 볼 때에 작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이스라엘의 사명의 열성적 성격을 제창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갈등은 전능자에 의하여 선택된 근거에서 발생되었다. 전쟁은 단지 이스라엘을 고통스러운 속박으로부터 구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싸워서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것들이 그것에 대해 부수적이요, 공헌하는 것에 불과하였던 그 한 가지 목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장막에 거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구속함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명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다.

어떠한 다른 요구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양으로 지금 행하고, 촉구한다는 주장을 적절하게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밖의 누구도 바로의 주장과 반대되는 하나님의 주장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는, '백성은 내 것이니 내가 그들을 가도록 하지 않으리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백성은 내 것이니 너는 그들을 가게 하라. 그들은 나를 섬기도록 창조되고 택함을 입었노라'고 말씀했다.♡

갈등은 한 종족의 운명 위에서 행하여지는 중이었고, 인간의 역사와 섬김 속에 위치하였다. 이스라엘은 노예였는가, 아니면 제사장이었는가? 그들은 짐을 지고 있는 애굽의 짐승인가, 아니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인가? 이것이 문제였다.

하나님께서 이 큰 논쟁의 최전방에서 그 질문을 크고 선명하게 쓰는 것 외의 다른 일을 했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나는 그 요구가 예언적이었다는 것을 덧붙이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이 일에 있어서도 역시 하나님의 백성의 모형이었다. 기독교에서 로마제국을 상대로 갈등이 시작되었을 때 큰 논쟁이 일어났던 그 하나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현재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그때에 시도하신 것이 무엇인지 안다. 여러 국가들은 그들의 우상을 포기해야 했고 그 결과 그 민족들의 일상적인 말인 우상들의 이름이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기독교 교회는 신전이 폐쇄되어야 한다거나 이방 제사 직분이 폐지되어야만 한다는 어떤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요구한 것은, 언뜻 보기에는 가장 사소한 것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살아있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였다 -

바로 이스라엘은 이 요구를 애굽에서 한 것이었다. 그것을 놓고 수세기 동안 투쟁이 맹렬했다. 그 투쟁에서 이겼을 때에 승리가 찾아 왔다. 그 승리는 로마제국에게 예배를 명령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만든 어떤 주장에 대한 승리가 아니었다.

또한 그것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님의 요구에 따라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 주장을 고수했고, 승리가 왔을 때에는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들을 성별시켰다"(성경: 그 구조와 목적, Vol.IV).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바로에 대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책임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요, 그에게 순종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요, 은혜로 그에게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로 그를 취급하기 전에 먼저 자비롭게 행동하셨다. 그의 방법은 언제나 그러하다. 그는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에게 홍수를 내리기 전에 노아를 의의 설교자로 보내셨고, 에녹을 다가오는 폭풍을 대비하는 사자로 보내셨다.

그는 이스라엘인들을 포로로 추방하기 전에 그들에게 선지자를 차례로 보내셨다. 그 뒤에 주님은 A. D. 70년에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전에 그의 친아들을 보내셨고, 이어서 사도들을 보내셨다.

오늘날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지금 은혜와 오래 참으심으로 다스리시고 그의 종을 멀리, 그리고 널리 보내시며 다가올 진노로부터 피하라고 사람들에게 명령한다.

그러나 구원의 날이 급속히 가까이 다가와서 주께서 하나님의 우편의 자리에서 일어나면 자비의 문은 닫히게 되고,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의 폭풍이 몰아치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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