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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1]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1]

En Hakkore 2024. 6. 11. 12:05

모세의 어린 시절(출애굽기 2장)

이 장의 서두에 있는 구절에는, 사랑스러운 구원의 그림이 있다. 아기 모세가 우리가 택한 마지막 지점인 죽음의 장소, 하수가에 놓여 있었다.

구원도 그와 같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이것으로부터 그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을 흉악하게 범하고 나면, 정의는 그 형벌의 집행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 대하여 소망의 문을 닫고 불운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아, 바로 이 지점에서 복음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예비하심에 선포하시고(우리들 마음속에 상상도 해보지 못한) 죽음을 통하여 생명이 우리에게 온다고 말하고 있다.

모세는 죽음의 장소로 옮겨졌지만 그는 방주(주: 노아의 방주와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가 여기에만 사용된 것은 의미있는 일로서, 그것은 아주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모형화 한 것이었다) 안에서 안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방주는 우리를 위하여 죽음으로 내려가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의 공의로 인하여 그 무서운 죄의 삯이 기필코 지불되어야만 하겠기에, 흠 없으신 그의 아들을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 3:18)고 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대속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또한 아기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의 장소에 있었다. 그리고 그를 그곳에 두게 한 것이 '믿음' 이었던 것과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일체감을 갖는 것도 믿음임을 주목하라.

다시 말해서, 모세가 죽음의 장소에서 옮김을 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일어나실 때 우리도 그와 함께 일어났다(엡 2:5, 6). 모형적인 그림은 더 멀리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아기 모세에게 마련된 하나님의 섭리의 자비로우신 예비하심(출 2:4)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아기는 우리 하늘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돌보심 아래 있는 자로 구체적으로 예증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모세가 바로의 권속이 되어 궁중으로 들어감은 지금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고 있는, 위에 있는 '처소'를 예시해 준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출 2:5-9).

그날에 바로의 딸이 하수로 내려온 것이 우연이나 뜻밖의 사건이 아닌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주관하는 세계에는 뜻밖의 일이나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제때에 일어나는 것은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이암은 이"(히 2:10)의 영원하신 하나님의 작정(decree)이 성취된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무대 배경의 뒤에 계셔서 모든 것을 그의 영광을 위하여 명하시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장 작은 행동마저도 그에 의하여 조정된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

모든 것이 제때에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이 동사는 현재형이다)고 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이 성취되기 때문이다.

큰 문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작은 경첩에 의하여 열린다. 하나님은 제국의 일으킴과 멸망만을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참새 한 마리의 떨어짐도 관할하신다.

애굽의 공주가 목욕하러 강으로 가되, 갈대 숲 사이의 방주가 있는 바로 그 장소에 가도록 그 마음에 생각을 넣어주신 이가 하나님이시요, 그녀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불쌍한 마음으로(아버지의 권세를 거역함에 대하여 역겨워하느니보다) 그녀를 감동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었다.

또한 이 거만한 군주의 딸로 하여금 미리암의 제의를 수락케 하신 것과 어린 아기를 그의 친어머니가 보살피도록 공주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도 하나님이었다. 오직 이곳에서 우리의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은 평화를 가질 수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롬 11:36)라고 하신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을 얼마나 좋은 휴식의 피난처가 되는가!

Arthur W. Pink 출애굽기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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