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82]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82]

En Hakkore 2024. 6. 10. 11:51

끝까지 변치말라는 하나님의 요청 3(히 12:3-4)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그리스도의 고난의 막중함을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같이......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 이같이 고통스럽고 혹독하고 악의에 차고 그처럼 오랫동안 계속되는 고난, 사람들과 사단이 악한 지혜로 꾸며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예수님은 당하셨다.

"이같이"라는 말이 여기에 쓰여진 것은 우리의 놀라움과 주님께 대한 경배를 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그가 비록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침뱉음을 받았으며 자주빛 의복을 사람들이 입혀주는대로 입고서 경멸어린 매를 맞으셨다.

그 원수들은 조롱조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희롱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쳤다(마 27:29). 그들은 예수님의 등을 째찍질로 상처내었다. 시편기자가 예고한 대로다(시 129:3). 또한 그들은 범죄자에게 내리는 사형언도를 내리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것도 수치스럽게 죽도록 하기 위해서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였다, 그들은 대단히 고결한 척 하였지만 "죄인들" 이었다. 그 죄인들의 손에서 그러한 수모를 받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거역"을 '매우 예리하게 느끼셨다' 왜냐하면 그는 슬픔을 아는 분이요 질고를 아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라고 외치셨다(시 69: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신이 가야하는 의무의 길에서 돌아서지 아니하시고 당신이 감당할 사명을 포기하시기는커녕 이를 계속해 나가셨다.

그는 원수들로부터 도망치지 않으셨으며 그들의 잔인한 핍박을 받으시면서도 낙심하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참아내셨다". 우리가 앞 구절의 강해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 말은 가장 고상하고 최고의 의미로써 그리스도께 사용된 것이다.

그는 당신 위에 놓여진 모든 불명예를 인내로 견뎌내셨다. 당신을 중상모략한 사람들에게 결코 앙갚음하지 않으셨고 또한 그들을 욕하지 않으셨다. 그는 끝까지 처음의 자세를 흐트려 뜨리지 않으셨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성시키셨다.

최고의 위기에 도달했을 때에 그는 당황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사 50:7, 눅9:51).

시련받는 독자여, 그대는 그대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훼방의 잔보다 그대의 잔이 조금 더 충만하다고 느끼는가?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마신 잔을 어디 한번 돌아보라! 여기에 곤고함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처방이 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도록 여러분들에게 부과된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온유하시고 승리에 찬 모습으로 "참아내셨다" 시련이나 하나님의 원수들로부터 오는 훼방때문에 마음이 낙심될 때에, 그리스도를 "생각하라".

그러면 참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그대의 부패한 욕구를 잠잠케 하고 억눌려 줄 것이다. 거대한 표준과 용기를 북돋는 것으로 그대 마음 앞에 그리스도를 세워두라 - 인내의 표본이요 복되신 말씀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분으로서 말이다.

"참으면 또한 주와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딤후 2:12).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각하게 됨은 우리 영혼 속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은 낙심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다.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헬라어에서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라는 말 사이에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있다(우리말 개혁 성경에서는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나타나 있지 않음 - 역자주). 그러나 여기에는 두가지 구별되는 생각이 드러나 있다.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피곤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은 그만둘 정도로 좌절되지 않기 위하여 라는 말이다. "낙심치 않는다"는 말은 그 피곤하게 되는 이유를 진술해 준다. 여기서 "피곤하다"라는 말은 강한 어휘이다.

그 말은 기진하여 자신의 결심을 깨뜨릴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심령이 극도로 잦아질 정도로 절망에 빠진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난관과 시련과 반대와 핍박에 부닥쳐 "뒤를 돌아다 볼"(눅 9:62) 정도로 낙담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부분적으로 나 전적으로 복음에 관한 자신의 신앙고백을 포기하는 지점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이 말씀은 배도를 경계하는 또다른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보시고 칭찬하셨던 일의 반대되는 일에 빠지지 말라는 주의를 받고 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3) - 에베소 교회는 모든 대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끝까지 견지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어느 시기들을 통해서 당신의 백성들을 거스리는 맹렬한 대적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 백성들의 충성의 진실성과 강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히브리서를 처음 받아보았던 사람들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그들은 큰 시련과 고난과 시험과 궁핍에 처하였고, 그래서 이러한 권면을 받기에 합당한 위치에 있었고 그와 함께 이러한 경계를 받아야 했다. 채찍을 맞고 재산의 손실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중상모략을 받고 죽음의 위협까지 가하는 시련들은 낙담과 절망에 빠지게 하는 강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싶은 강력한 시험을 유발시킨다. 그러한 종교적인 핍박을 받고 있을 때에는 믿음의 강력한 활 활성만이 그 마음을 굳게 지킬 수 있다.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그리스도의 "인내"에 그 마음이 사로잡혀 있으면 우리의 결연한 자세는 끝까지 참아낼 만큼 강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낙심하는 것". 그 낙심하는 것을 바로 고치지 않으면 그 낙심은 "피곤함"으로 이어지고, 기진함으로 이어진다. 이 마음의 낙심은 힘이 넘쳐 기운을 내는 것의 정반대이다. 만일 우리가 심한 대적과 맹렬한 핍박 아래서 "끝까지 참아내려면".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부단히 깨어있어야 한다.

핍박을 받을 때에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을 보존하기 위해서 영적인 생명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벧전 4:1)는 권면을 듣는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2,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전 16: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맡기신 여러 의무를 믿음으로 힘있게 행하지 않고 있으면 그 정도에 비례하여 마음에 낙담이 찾아 오는 것인가. 또한 마음의 낙담은 바로 그러한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믿음을 정기적으로 행사하지 않으면 영혼을 조용하고 안정되게 지키거나, 인내하면서 기도하게 할 다른 것이 없다. 만일 믿음의 역사를 중단하거나 여러 난제들을 생각하고 거기에 사로잡혀 시련들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기려고 하면, 금방 "핍박받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에 피곤함이 생기게 될 것이다.

거기에 모든 영적인 방면에서의 하양세가 시작된다 - 마땅하게 믿음의 역사를 나타내지 못하고, 결국 그리스도를 향해 냉담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결과를 맞는다! 믿음을 건전하게 행사하고 있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그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고후 4:17)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식은 다름아니고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다"(18절)는 의식이다.

Arthur. W. PIink 히브리서 강해 II p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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