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78]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78]

En Hakkore 2024. 6. 10. 11:49

믿음의 대상 4(히 12:2)

여기 이 본문 속에는 구주의 삶에 대한 네가지 요점이 지적되어 있다. 우리는 그 각 요소마다 자세히 주목해 보아야 한다.

첫째로,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행하고 고난을 받도록 한 동기와 이유'이다. 우리는 그 요점 속에서 그 분이 우리의 본이요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분으로 드러나 있음을 발견한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구주께서 인내하시면서 그 의무를 다 감당하실 때에 그 마음 속에서 자긍했던 최종적인 동기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그 동기 속에서 그 의무가 수반된 모든 권한을 참아 내셨던 것이다. "기쁨"이란 말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가 있다. 아마 그 모든 정의가 바로 이 말씀 속에 농축되어 있다고 하겠다.

구속주께서는 그 모든 것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더 좋아하셨다(히 10:5-9). 그러나 그 영광은 구속 개인의 높아지심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완성한 다음에 따라올 교회의 구원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언약으로 "그 앞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있는 즐거움(기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고 당신에게 주어져야 하는 그 영광스러운 상급에 대한 기개가 늘 사로잡고 있었는데, 바로 12:2이 앞절에서 묘사된 모습을 받쳐주고 있다.

우리의 경주의 모범이 되시는 우리의 구주의 모습이 여기서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결승점에는 모든 경주자들이 다 바라볼 수 있는 면류관이 걸려 있다.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지정하신 코스를 달려가실 때에 바로 그 면류관이 우리 구원의 주님 앞에 언제나 걸려있었던 것이다.

그 분은 힘을 북돋아주는 복스러운 그 상급을 언제나 자기 옆에 두고 계셨다. 그 마음은 성경에 기록된 메시야 언약과 예언을 붙잡고 있었다. 당신 영혼의 수고가 완전히 다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족감을 가지고 부단히 소망을 잃지 않으셨던 것이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장차 나타날 한 '도성'을 내다 보았다(11:1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올 일'을 이야기 하였다(11:20). 믿음으로 모세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다(11:26). 믿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면서 사셨고 죽으셨던 것이다.

둘째로, "십자가를 참으사".

거기서 우리는 영웅적인 불굴의 용기를 가진 '당신의 병사들에게 사령관으로서 본을 보이시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치와 고통을 당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그 모든 수치와 고통 앞에서 의연하게 서 계셨다.

그는 체능적으로 또는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는 식으로 십자가를 참아내신 것이 아니다. 그는 지고하고 가장 고상한 의미에서 당신의 가장 거룩한 영혼 전체를 그려 참아내셨던 것이다. 그는 결코 흔들리거나 요동하거나 불평하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그는 우리가 "당신의 자취를 따라" 가는데 있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본을 남기셨던 것이다(벧전 2:21). 그러므로 그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지니라"(마 16:24)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힘은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서", 부단히 믿음의 눈으로 면류관을 바라보며, 우리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봄으로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셋째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여기에서는 대장되신 예수께서 자신의 나아가야 할  길을 막으려 하는 그 무엇이든지 다 무시해 버리심'을 발견한다. 우리는 이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라는 말과 다 무시해 버리심'을 발견한다.

우리는 이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라는 말과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조화시킬 염두를 내지 못한다. 개의치 아니하더니"라는 말과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조화시킬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무시하시더니)라는 말은 거친 용어이다. 그러나 그 말로 표현될 만한 것들이 있다. 구주께서는 사물들을 바라보실 때에 바른 전망을 가지고 보셨다. 사물들이 가진 적당한 가치를 보면서 사물들을 평가하신 것이다.

당신 앞에 놓여 있는 즐거움의 빛에 비추어 역경과 핍박과 사람들로부터 오는 고난과 무시당함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셨던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에게 "한 본"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부끄러움을 비웃기는커녕 그 부끄러움을 크게 생각하고 부끄러움의 위협을 두렵게 생각한다. 성경적으로 주님이 당하신 일을 당하고 주님이 입으신 옷을 입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자들도 얼마나 많은가. 상급과 면류관과 영원한 즐거움을 더 많이 묵상하라는 것이다 - 바로 그것이 우리가 치르도록 되어 있는 모든 작은 희생들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614

'강해시리즈 > 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Hebrews 180]  (0) 2024.06.10
[Hebrews 179]  (0) 2024.06.10
[Hebrews 177]  (0) 2024.06.10
[Hebrews 176]  (0) 2024.06.10
[Hebrews 175]  (0) 2024.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