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7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77]

En Hakkore 2024. 6. 10. 11:48

믿음의 대상 3(히 12:2)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믿음의 생활이란 무엇인가?

첫째,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인간 예수처럼 자신을 던져 하나님을 철저하고 다부지고 완벽하게 의지한 이는 없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그처럼 완벽하게 자신을 복종시킨 자도 없었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며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요 6:57). 이것이 바로 주님 자신의 고백이었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돌로 떡을 만들라는 시험을 받으셨을 때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그처럼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기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배려를 확신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확고하게 의뢰하고 하나님을 기다렸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의 절대적인 모습이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뚜렷하였기 때문에 십자가 주위에서 예수님을 비웃던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지독한 욕설로 돌려 말하였다 -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시 22:8).

둘째, 믿음의 삶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서 영위하는" 삶이다.

인간 예수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깊고 부단하게 인식하면서 사셨던 이가 없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시 16:8). "나를 보내신 이는 나와 함께 계시니"(요 8:29). 예수님은 언제나 그 사실을 의식 속에 가지고 계셨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시 22:10)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그는 베들레헴에서 갈보리까지 한번도 아버지와의 교제를 끊은 적이 없었고 한번도 그 교제가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그 무서운 세 시간의 흑암이 지난 다음에 그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울부짖었으셨다.

셋째, 믿음의 삶은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사는" 삶이다.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갈 5:6). 사랑은 그 사랑하는 대상을 기쁘게 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존중할 뿐 아니라 그 교훈을 존중한다. 믿음은 장래를 위해서 하나님을 신뢰할 뿐 아니라, 현재에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한다.

이 사실이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최고로 실증되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그리고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는 말씀이 그의 지상의 노정 전체를 특징짓는 말씀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그 분이 "성경에 응하게 하려고" 자신을 통제하고 계신 것을 발견한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따라서 사셨다. 그리고 그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5:10).

넷째, 믿음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세를 확신하는" 삶이다.

시간과 감각에 속한 것들을 벗어나 그 위를 보는 것이고, 이 세상의 형적과 환영보다 높이 보며,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11:1). 그처럼 믿음은 소유한 자로 하여금 장차 올 것을 즐거워하며 그 능력 안에서 현재 살아가게 한다.

경건케 사는 자를 미혹하고 그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온전한 사람이신 예수님께 하들의 힘을 쓰지 못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 16:31)고 선언하셨다. 마귀가 모든 나라를 제언했을 때 그 분은 신속하게 "사단아 물러가라"고 대답하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예수님의 인식이 너무나 생생한 나머지 세상에서 할 일을 하시면서도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요 3:13)로 말씀하셨다.

"그러니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이 예수님은 당신의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의존하셨고, 그 아버지를 믿는 믿음에서 완전하셨고, 그의 뜻에 복종하시되 최고의 요구에 응하셨고,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그 교제를 결코 중단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아버지께서 당신 앞에서 언제나 불타고 계신 것같이 생생하게 그 분을 의식하셨고 그러한 의식가운데에서 현재 모든 빛을 작게 여기셨으며 그 모든 빛을 무색케 하셨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주시는 상'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모든 고통과 수치때문에 괴로움을 당하실 때에도 우리 앞에 믿음의 생활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분은 이러한 모든 면에서 우리의 표본이십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의 손을 더듬어 찾아 잡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려 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땅 위라 부르는 이 희미한 지점' 너머를 우리가 바라보려고 추구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장래의 소망의 밝은 빛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와 희생을 다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가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곧 이 믿음의 오솔길에서도 그 분이 '당신의 양들을 모시고 그 앞에 가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그 분은 당신이 행하지 아니한 것을 우리가 행하도록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내 믿음을 그에게 구리라'고 그가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에게 돌아서셔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명하십니다"(A. Maclaren, 우리는 바로 이 강론에서 Maclaren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참된 기독교가 그렇게 적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기독교는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을 그 내용으로 삼는다. "부단히 신뢰하고 복종하면서 사랑하는 심정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것', 그 분에게 마음이 사로잡히고, 그 분에게 생각이 머무는 것 - 바로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의 비밀이다.♥

기독교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에 사로잡히는 것만큼, 또한 내가 그를 의지하고 그 삶의 충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를 들여마시는 것만큼만 진정한 것이다. 또한 그가 내 앞에 세워놓은 이상을 실현하는 것만큼만 나의 기독교는 참된 것이다. 그 안에 능력이 있으며 "인내로" 경주할 힘을 그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영위되는 삶,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다. 그리스도의 삶이 바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하고 사는 삶이었듯이 말이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빌 1:2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서, 나로 말미암아 살려고 계신 것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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