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76]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76]

En Hakkore 2024. 6. 10. 11:48

믿음의 대상 2(히 12:2)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이 경주를 위해서 두 가지 일이 필요하다: 속도와 힘이다 -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시 19:5). 게으름과 나태함을 반대하는 것이고, 또 한편에서는 연약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두가지 요점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은혜 안에서 힘입고, 열심을 내어 경건의 연습을 하는 일이다. "경주하다"(달리다)는 말 속에는 다른 것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거기에 관계되어야 하는 힘은 어떠한 것인가? 이 "경주"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행하고 고난받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그때를 향하여 전진해 나가며, 갈수록 더 힘있게 진행해 나가고, 우리의 있는 힘을 다해 끝까지 참아내는 것을 요구한다. 아, 그러한 일을 위해서 충분한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첫째로 우리보다 앞선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의 믿음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함이며, 그들의 승리가 성경에 기록된 것도 우리의 용기를 위함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들의 경우는 우리에게 동기는 제공할 수 있으나 필요한 힘을 공급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에 이러한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우리의 마음을 게으르게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믿음을 증거하고, 우리는 그들에 대한 기업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용하며, 그들의 삶의 아름다운 곡조를 따라 더욱 더 견고한 걸음을 걷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그 허다한 많은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에게 집중되어 있다.

군대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군대의 지도자에 집중한다.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본다. 그로부터 우리는 진정한 힘을 얻는다. 그는 우리의 생명의 빛이시기 때문이다"(A. Saphir).

이 모든 것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탁월하시다. 그는 "다른 경주자"들 틈에 끼어 소개되어 있지 않고, 또는 믿음의 어떤 특징들을 모범으로 보여주는 분으로서도 아니고 자시의 인격을 "믿음의 주와 온전케 하시는 이(완성지으시는 이)"로서 소개되어 있다.

이 본문은 주님을 경주자들을 위한 최선의 모범자로 표현한다. 경주자들의 믿음의 위대한 대상일 뿐 아니라 최상의 모범자도 되신다. 물론 흠정역의 번역을 보면 이 점에 있어서 무엇인가 좀 애매한 느낌이 드는 듯하다.

우리 본문이 가리키는 바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들 속에 믿음을 달성시키고 끝까지 그 믿음을 보존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지않다. 물론 성경의 다른 곳에서 매우 충분하게 가르쳐지는 진리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여기에서는 스스로 믿음의 전 코스를 시작하시고 완성지으신 분으로 묘사된다.

스스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완전한 모범과 증인으로서 말이다. 그가 견고하고 신실하게 붙잡고 계셨다. 그의 "십자가를 인내하심"은 가장 완벽한 연단이었고, 믿음에 대한 가장 완벽한 실증이었다. 따라서 그는 믿음의 표본도 되시고 대상도 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

"이기는 그에게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여기서 "우리의"라는 말이 번역자에 의해서 보충되어 있음을 신중하게 주목해 보아야 한다. 그 말은 생략되어도 무방할 수 있으나 약간의 유익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주"(Author)라는 말의 헬라어는 "생성시키는" 또는 "기원시킨" 이라는 뜻을 가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앞장서다"라는 의미이다.

같은 말을 히브리서 2:10에서는 "구원의 주"(구원의 대장, Captain), 사도행전 3:15에서는 "생명의 주"(Prince)로 번역되어 있다. 거기에서 그 말이 가진 뜻은 분명히 지도자 또는 주장이라는 말로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앞서가는 자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구세주를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긴 믿음의 행로 전반을 이끈 지도자로 묘사되어 있으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위대하 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성경에서는 여기서 구세주의 공식적 명칭인 "그리스도"라는 말 대신 개인적인 명칭인 "예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그 점이 그 사실을 확증해 주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의 인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인간 예수는 범사에 당신의 형제들과 같이 되사 진실로 믿음의 삶을 보여주셨다. 그렇다. 예수께서 여기 지상에서 영위하셨던 삶은 믿음의 삶이었다.

이점을 충분하고 강하게 강조하지 않고 왔다. 범사에서와 마찬가지로 믿음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완벽한 모델이시다. "믿음으로 그는 행하셨고, 언제나 아버지를 바라보셨고, 아버지를 의지하는 아들로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으며, 아버지의 충만하심 속에서 아들로서 그 영광을 받으신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모든 좌절과 난관과 대적을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당신을 보내신 주 하나님 아버지께 당신의 문제를 맡기셨다. 그는 바로 그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오신 것이다. 믿음으로 그는 모든 시험을 물리치셨고 이겨내셨다.

그것이 사단으로부터 오든지 이스라엘의 거짓된 메시야의 사상에서 온 것이었든지, 아니면 장신의 제자들에게서 온 것이었든지 무엇이든 말이다. 믿음으로 그는 이적과 계시를 행하셨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사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무덤에서 나사로를 일으키시기 전에 그는 믿음의 힘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분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그의 모든 이적의 본질을 배우게 된다. 그는 하나님을 의뢰했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명령을 하셨다. 자신의 충만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명령이다"(A. Saphir).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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