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62]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62]

En Hakkore 2024. 6. 9. 10:40

믿음의 정점 II-②(히 11:37-38)

우리는 베드로전서 1:7에서 사도가 믿음을 금에 비교하면서 금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말했다. 비록 용광로에 넣어보면 정금은 그것을 통해서 입증이 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금은 없어져 가는 것이다 -

그것은 땅과 세상에 속한 것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얻으려고 수고하며 영혼을 판다. 그러나 그 금은 죽음의 자리에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심판 보좌에서 그것이 무엇을 대신하여 설 수 있겠는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에 그 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뒤에 남는다.

아무도 그것을 가지고 내세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믿음은 얼마나 더 귀한 것인가. 믿음은 그 믿음을 소유한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요점은,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것은 "믿음의 시련"이지 그 믿음 자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신령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점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시련과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실상과 그 능력을 영혼으로 하여금 더 명백히 깨닫게 하는 반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시련과 혼란은 말하자면 믿음의 생명력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시련 속에서 대부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숨기시기 때문이다. 그 얼굴의 빛이 더 이상 보이지 아니하고, 그 미소가 어두운 섭리를 통해서 가리워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붙잡는 비밀스러운 능력을 발하신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 영혼은 기가 막힌 절망에 깊이 빠져 들어갈 것이고, 불신앙의 능력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갈등이 있다. 믿음에 대적하여 싸우는 시련과 그 시련을 맞아 싸우는 믿음의 갈등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련 속에서 예리한 갈등을 겪으면서 뜨거운 풀무불 속에 있는 초자연적이고 신령한 믿음은 타 없어지거나 멸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을 꽉 부여잡고,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의 미쁘심을 붙잡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시련은 극히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을 가진 자에게 "귀한 것"이다. 그 믿음의 순전성이 그 믿음을 가진 자에게 더욱더 드러나게 되니 말이다. 분별하는 영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보기에 그것은 "존귀하다". 그 백성들은 시련과 축복을 받은 동료 성도의 체험 속에서 목격한 것을 통하여 힘과 위안을 얻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존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백한 인증으로 그것을 영화롭게 하며, 당신이 인정하시는 미소의 인을 그 위에 쳐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 예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는 마지막 날에 그것은 "존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 "모든 믿는 자에게서 귀히 여김을 얻으실 것이기" 때문이다(살후 1:10).♡

가장 어려운 역경을 견뎌내는 것은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믿음에는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에 그 둘 다 같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힘을 주실 때에 그 둘 다 동등한 효과를 발하는 것이다.

대단한 업적을 이루는 것이나, 무서운 고통을 견뎌내는 것은 육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천국과 지옥의 사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순종의 의무가 분명해질 때 믿음에 있어서는 둘 다 같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히브리서 11:33-38로부터 그 점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대목은 히브리서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이 대목의 첫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행한 기사들을 나열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지탱하여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내하여서 용기있게 참아냈던 그 무서운 고난과 역경을 나열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전자의 경우 같이 초자연적인 믿음의 성격을 그러낸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믿음은 히브리서 11장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절정을 이룬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그 무서운 고난이 믿음의 생명력을 붙잡고 계시는 성령의 역사 속에서 복된 절정을 이룬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고난들은 믿음에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을 표해준다. 어째서 그러한가?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내시기를 기뻐하시든지 거기에 공손히 순종하는 마음을 명백히 드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철저히 복종하는 나머지 하나님을 떠나 배도하는 것보다 악형과 죽음을 일부러 기꺼이 선택하였던 것이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은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다(벧전 3:4).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지정하여 주시든지 믿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온유를 더욱더 명백히 드러내는 것이 없다 -

마치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처럼 수동적으로 맡기는 그러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 흔들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신뢰하는 것, 비록 주께서 우리로 죽게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요동치 않고 확신하는 것, 눈으로 보기에는 우리를 버리는 것 같은 때에도 주님을 의뢰하는 것, 그것이 믿음의 모든 행사 중에서 가장 고차원적인 것이다.♥

이 서론적인 문단을 끝맺기 전에, 우리는 위험과 시련과 핍박의 시대에 "믿음의 여러 행사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첫째, 믿음은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는 것"(계 19:6)임을 인식한다. 또한 그가 우주의 보좌 위에 앉으셔서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디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은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기 없도다"(딛 4:35)라는 진리를 인정한다.

그렇다, 사랑하는이여, 신령한 믿음은 모든 일들이 우연으로 일어나지 않고 주 하나님에 의해서 통제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둘째, 믿음은 우리 삶 속에 들어오는 그 어느 것이라도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임을 인식한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허락이 없이는 그 어떤 원수도 우리를 전혀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마귀는 주께로부터 허락을 받기까지 욥을 만지지도 못했고 베드로를 가둘 수 없었다! 여기에 고통을 받으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위한 얼마나 놀라운 확실한 안식처가 있는가!

셋째로, 믿음은 사단이 우리를 향해서 아무리 흉포한 불 같은 체험의 격동을 허락받아 행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아무리 지독한 핍박을 준다 할지라도 그들의 악한 노력은 합력하여 "우리의 선을" 이루게 됨을 인식한다(롬 8:28).

넷째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화합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현재의 도움과 힘과 위안을 얻는다. 믿음은 확실한 말씀,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라는 말씀으로부터 평안과 위안을 끌어낸다.

또한 믿음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는 확신을 가진다.

끝으로 믿음은 현재의 갈등으로부터 시선을 떼어 상급을 바라봄에 따라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라는 확신을 가진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풀무불과 같은 시련을 통과하게 될 때에 믿음은 그러한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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