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5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57]

En Hakkore 2024. 6. 9. 10:36

믿음의 정점 2(히 11:35-36)

믿음은 역경에서도 인내하게 한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역경을 성경적인 빛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환란이 우리에게 거룩함을 입게 하는 것이다. 믿음이 역사하지 않으면 마음은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피조물의 손이나 피조물의 반역적인 모습만 드러나 보이는 것이고, 조급함과 분노만 일어나는 것이다. 더욱더 악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강퍅한 생각을 갖고 싶은 충동을 받게 된다. 또한 "주께서 나를 버리셨나보다 주께서 나를 버리셨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면적인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믿음이 다시 역사할 때에, 얼마나 다른 모습이 드러나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일을 하면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말해야 한다(시 42:5).

지상에 있는 교회가 통과해야 하는 그 외적인 조건을 결정짓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심에 속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다고 여기실 때에 번영의 시기를 주기도 하시고 역경의 시기를 주기도 하시는 것이다. 평안하고 안전할 때와 핍박을 당하고 위험할 때가 서로 교차적으로 주어진다.

낮과 밤과 여름과 겨울이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변덕을 부리시는 분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벧엘과 그 제단을 떠나 남으로 향하기까지는(애굽으로 향했음) 그 땅에 기근이 일어나지 않았다(창 12:8-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했을 때 비로소 그 여호와의 진노가 그들을 향하여 격발되었으며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했다"(삿 2:11-14). 사람들이 잠들었을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던 것이다"(마 13:25).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을 때 곤욕한 핍박의 시대를 체험하게 되었다(계 2:4, 9:10). 우리가 지금 교회와 가정과 나라 속에서 무율법이 판을 치는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하는 -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전 시대의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조롱을 받지도 않을 것이고 그 의로움을 통해서 조상들의 불의의 댓가를 그 자손들에게 갚아 주신다. 그래서 번영의 시기 다음에 역경의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경의 시기에도 영적인 죽음이나 어떤 육신적인 위험의 형태를 띈다 할지라도, 소위 공적인 "예배당"이라 불리우는 곳에서 발견되는 혐오스러운 것 때문에 합심하여 부르짖는 그 남은 경건한 사람들, 또는 외식적인 신앙고백자들의 핍박을 온유하게 참아내거나, 뻔뻔스럽고 불경건한 세상의 핍박을 아름답게 견뎌내는 사람들은 역시 하나님께로 열납을 받고,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로운 자들이다.

세상적인 면에서 가장 큰 번영을 이루었던 시기에 그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만큼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사람들인 것이다. 밤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구름 사이에 간혹 드러나 보이는 별이 더 반짝여 보인다.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회 전체 상태가 침체되어 있을수록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드러내 보이는 그 배경은 더욱더 합당해진다.

신령한 믿음을 향해서 반대가 거세면 거셀수록 그 믿음의 가장 결정적인 열매를 드러낼 기회는 더 커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부여하시는지 마음으로 온유하게 복종하게 하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응하는 것보다 믿음의 더 높은 국면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라고 말한다. 흔히 "고난받는" 믿음은 자기의 승리를 드러내 놓고 자랑할 수 있는 믿음보다 더 위대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믿음이 최고 절정의 순간에 이르게 될 때에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이다"라고 선언한다.

"신령한 눈으로 볼 때에 지금까지 생각한 국면만큼 다음에 생각하는 믿음의 여러 국면들도 많은 영광을 가지고 있다. 교회가 모든 악과 이 세상에서 생각될 수 있는 모든 무시무시하고 비참한 상황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일 때 교회가 가장 평안하고 번성하는 경우만큼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

그 교회의 외적인 모습만 바라보면 참으로 참아낼 수 없는 무서운 상황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상황 속에서도 효과적으로 역사하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보고, 평안이 깃들고 위안이 넘치고, 거룩을 향하여 진행해 나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정죄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유익하게 하고, 결국 그 모든 것을 이겨 승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사도는 이러한 경우는 모두가 아니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경우를 마카베(Maccabees)시대의 앗수르왕 안디오쿠스 아래서 교회가 핍박당하던 시대에서 취하여 설명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① 그 시대는 구약시대의 정경이 완성되고, 구약시대의 신적 영감에 의해서 성경의 기록을 마쳤던 그 이후였다. 그러므로 사도가 기억에도 생생한 그 악령높은 역사적인 사실로부터 이러한 것들을 대표적으로 끌어냈을 때에, 여전히 지금 남아있는 마카베오서 같은 몇가지 책들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가 그러한 것들을 교회에 전달할 때에 신적인 영감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②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던 그 당시는 교회 안에 특이한 선지자가 없었다. 유대인들이 고백하는 대로 제2성경 시대에 예언이 그쳤다. 이 사실은 말씀의 원리와 교회의 일반적인 사역이, 어떠한 대처에도 불구하고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의무를 감당하도록 하는데 충분했음을 명백히 해준다.

③ 구약시대에 그 안디오쿠스에 의해서 교회가 받은 마지막 핍박은 적그리스도하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행하는 마지막 핍박을 모형적으로 그려주었다.

다니엘 8:10-14, 23-25:11:36-39를 요한계시록의 여러 곳과 비교해 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로마의 적그리스도 아래서 고난을 당했던 사람들의 순교사는 언어로 표현된 어느 것보다 이 문맥을 보다 잘 주석한다"(J. Owen).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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