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51]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51]

En Hakkore 2024. 6. 8. 11:35

믿음이 성취한 것들 1(히 11:33-34)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33-34).

참된 믿음은 모든 체험적인 경건에서 탁월한 역할을 수행한다. 믿음의 은혜가 전혀없는 곳에서는 하나님도 없고 세상에 소망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신령한 원리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적은 정도라고 할지라도 기이하고 이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한 신령한 원리를 소유한 사람이 잠시동안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에 ㅐ하여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변화는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변화이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마 17:20)". 작은 알갱이로되 그 안에 생명의 원리가 있고, 장차 자라날 나무의 눈이 있다면, 그래서 그 마음에 은혜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면 - 그것은 발결하여 결국 영광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 각자는 우리 믿음의 "기원"을 확인하는 수고를 부지런히 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여러 종류의 믿음이 증거되고 있다. 죽은 믿음, 귀신 믿음, 억지로 마지 못해 믿는 믿음,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믿음 - 이 모든 유의 믿음은 정말 공포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믿음은 위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령한 믿음은 그 기원에 있어서"신적"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9). 참된 믿음은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하늘로부터 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신령한 믿음은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령한 믿음은 전능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서 산출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생명을 주시는 능력으로 말씀을 우리 영혼에 적응시킬 때에 일어나는 것이다.

자,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탱하시는" 것이다. 신령한 믿음은 자기 스스로 지탱되거나 사람의 힘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신령한 믿음은 그 스스로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며, 그 믿음을 가진 자가 그 믿음을 스스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정말 대다수의 사람들의 "믿음"은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성질을 갖기는커녕 자신의 능력을 기만적으로 믿는 것으로 추인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마음 속에 산출하신 믿음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없으며 그 믿음처럼 성령이 지탱시켜 주시는 능력이 아니고는 전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대다수의 사람들의 "믿음"은 전적으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바울의 말을 그들에게 적용시켜 말할 수 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함이라 우리 없이 왕노릇하였도다" - 그러나 성령없이 왕노릇 한다.

여기서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탱시켜 주시는 믿음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역사하게 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살리시는 능력에 의해서만 그 믿음은 역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고 말씀하셨다. 분명히 주께서 우리를 능하게 하지 않으면 주님과 주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본성에서 나온 이른자 자기 자신이 지어내고 자기 스스로가 지탱시키는 믿음은 저 혼자 역사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할 때에 믿고,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을 수는 있다. 그리스도도 없다. "그들도" 그리스도를 붙잡을 수 있다. 또한 약속되어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약속을 적용시킬 수도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직무들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임무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믿음의 형제를 전혀 낼 수 없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겸비한 간구로 하나님의 긍휼의 발등상 앞에 엎드리게 한다.

그러한 믿음은 또한 "하나님께서" 더해 주시는 믿음이다.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 17:5). 그렇게 "더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령을 덜 의지하게 하지 않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 만일 하나님의 성령을 덜 의지하게 한다면 그것은 비참한 더함이다.

마치 탕자가 자기의 분깃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쓴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믿음의 더함은 언제나 같은 수준에 머물거나, 어떤 능력으로 항상 역사하거나, 동일한 생명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주 자기들의 믿음이 낮은 수준에 떨어지는 것을 고통스럽게 체험한다. 믿음을 가장 필요로 할 때에 그 믿음이 가장 연약한 상태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믿음이 더해진다 해서 그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그 사실을 의식하는 것도 아니다.

모세는 자기 믿음이 빛나고 있는 줄을 알지 못했다. 백부장이나 가나안 여인도 자기들이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조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때에 굉장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은 매우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은 부요하고 선함으로 그 믿음이 더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믿음이 더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장, 신자로서 참되고 생명있고 신령하고 체험적인 지식을 가지므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참되고 살아있는 신령한 지식을 가져 그들의 아버지를 아는 면에서의 성장이 아닌가?

믿음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양식을 얻는다. 단순한 관념으로써만 믿음을 키우려는 사람들은 거짓되고 주제넘은 확신만 키울 뿐이다. 하나님을 아는 신적 지식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난다. 이러한 지식이 자라날 때 믿음도 더해간다. 이러한 지식이 영혼 속에 견고해 질 때에, 그 믿음도 견고해 지고 힘을 얻는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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