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45]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45]

En Hakkore 2024. 6. 8. 11:31

라합의 믿음 4(히 11:31)

4. '그녀의 믿음의 신앙고백'

여호수아 2"9-11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 대목을 그녀가 처음 믿음을 가질 때부터 그러한 믿음의 진실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준다. 그녀의 신앙고백은 아주 함축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신앙고백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귀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고 확신했고, 하나님을 하늘과 땅의 하나님으로 인정했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그 이교도 땅에서 가졌던 모든 우상들을 다 버리고 자기 입술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으며 로마서 10:10에서 보는 바의 원리를 입증했던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더 나아가서 창문에 붉은 줄을 달아 내림으로서 자기 믿음의 색깔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였으며, 자신이 내건 깃발 아래 자기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녀의 그 행동은 오랫동인 진리를 믿는 다고 고백을 하면서도 위험이 다치면 단번에 무서워 떠는 사람을 얼마나 부끄럽게 하며, 핍박받는 사람들로부터 안전하게 멀리 떨어지려고 신중을 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끄럽게 하는가.

"사람들 앞에서 신앙고백을 선언하므로 그 믿음 자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참되고 진실하고 구원받은 믿음의 본질이다. 그 점이 단번에 그러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우리의 믿음과 절대적으로 나눠질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빛이나 어떤 확신들을 가지고 자신들이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부끄럽게도 성경에 지시된 대로 그것을 나타내는 길을 회피하면, 그들의 믿음은 헛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서를 믿는 것 자체뿐만 아니라 그 신앙고백의 자세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부단히 강조하고 계시다(마 10:33, 눅 9:26을 참조해 보라).

그런데, 핍박과 위험이 닥쳐올 때에 대담하게 믿음을 고백하지 않으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불신자들과 다름없이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제외될 것이 뻔하다"(J. Owen).

5.'그녀의 믿음의 안정성.'

그것은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두 정탐꾼을 끌어 내라고 했을 때에 그 여리고 왕에게 대답한 말 속에서 드러난다(수 2:3-5에 기록). 그녀는 그 두 정탐꾼들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생각하고 거짓말을 하여 사람들이 온 것도 알지 못한다고 하므로, 더 이상 자기 집에 그들이 없음을 확증했다.

그녀 측에서 그러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대답은 알려진 사실과 대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취한 행동은 리브가가 아들 야곱에게 한 본을 따른 것이다.

보편적으로 리브가의 행동을 큰 믿음의 열매로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존경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창 25:33). 그러나 여러 방면에서 상세히 따져보면(창 27:6,7등) 결코 그런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다. 주님은 자비로우심 속에서 자기 자녀들의 많은 연약을 눈감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주께서 정직한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는 간절함을 아실 때에 그러하시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 130:3). 하나님께서는 많은 연약을 참아내시되, 특히 당신의 양떼 중에 있는 어린 양에 대해서 더하시다.

"이러한 행동은, 공적인 거짓말 속에서는 많은 연약이 섞여 있음을 주목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자비하심으로 그 모든 것을 용서하시지만 정당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본을 따라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믿음이란 처음엔 많은 연약을 가지고 시작함을 보여준다.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행동을 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아니다. 신령한 것과 섞여있는 육신의 행동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갖기 전에 우리가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으신다. 또한 믿을 때에 우리가 가진 연약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으실 수 있다. 믿음을 갖기 전에 그녀는 창기였다. 믿음을 갖고 있는 그녀는 거짓말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동의 선함을 칭찬하사 상을 주시고, 우리의 행동의 악함은 용서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 짓도록 용서해 주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큰 죄의 빚을 사해주시고 우리를 은혜롭게 받아 주시고 우리의 많은 연약을 용서해 주시는 그 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다"(T. Manton).

야고보서 2:25나 우리가 다루는 이 히브리서의 본문은 성령께서 라합의 실수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계시다. 그것을 보는 것은 복되다. 오히려 두 경우에서 성령께서는 칭찬받을 만하고 믿음직한 그녀의 믿음을 언급하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행한 선한 일은 간과하고 악한 일만 들추어 내라고 하는 악의에 찬 세상과는 정반대가 되는 것이다. 은혜로운 이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연약과 허물에 대하여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형제들 속에서 일으키시는 그 선한 것을 주목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 자신의 서글픈 실수를 판단하는 일에 빠르다면, 우리 동료의 허물을 질책하려고 그렇게 벼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각자 다음의 권면의 말씀을 지키는 은혜를 구하자.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7. '그녀의 믿음의 성'.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여호수아 6:22,23이다.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이 집에 들어 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며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바로 뒤에 여리고 성이 불탈 때에 건짐받은 것은 라합뿐 아니라 그녀의 가족 전체였다. 그러나 여호수아 6:25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녀는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더라". 그래서 그녀가 사단의 노예로 있는 데서 옮겨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교도의 기생인 여리고의 한 시민으로 있다가 이제는 주의 백성의 회중에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후에 그녀는 유다의 한 왕의 아내가 되는 영예를 차지한다.

그리고 보아스의 어머니가 되며, 다윗의 할머니 중 한 사람이 된다. 그녀의 이름은 성경 역사의 지워지지 아니하는 두루마리에 새겨져 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구세주의 조상들 가운데 그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그녀는 예수님의 선조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는 이 가련한 여인을 얼마나 깊은 죄악과 수치에서 건져냈는가. 그리고 주권적인 은혜는 그녀로 하여금 얼마나 높은 영예와 존귀에 올려 주었는가. 참으로 믿음의 상은 놀랍고 영광스럽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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