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31]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31]

En Hakkore 2024. 6. 7. 15:09

모세의 믿음 3(히 11:28)

"유월절은 구약의 가장 엄숙한 제도 중 하나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가장 탁월하게 모형화시킨 절기 중 하나이다.

① 그 규례를 지키는 소재는 어린 양이었다(출 12:5). 그것은 그 후에 제정된 모든 다른 제사들에게까지 연결이 된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른다(요 1:29).

② 이 어린 양은 양떼들 중에서 취한 것이다(출 12:5).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인성을 취하시므로서 인간 교회의 양떼 중에서 취함을 입어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신 것이다(히 2:14-17).

③ 양떼 중에서 취한 어린 양은 그 양떼에서 온전히 분리되었다(출 12:6). 그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람들 중에서 취한 바 되어 죄인들과 분리되셨다(히 7:26).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죄로 오염이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그 죄의 모든 오염에서 완전히 자유로우신 분이다.

④ 그 어린 양은 흠이 없어야 했다(출 12:5). 이 점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된다. '점없고 흠없는 어린 양 같은'(벧전 1:19).

⑤ 이 어린 양은 죽임을 받아야 했고, 따라서 살해되었다(6절).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 죽음의 효과면에서 우리 주님은 사실상 창세 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셨다(계 13:8).

⑥ 이 어린 양은 그렇게 죽어져 희생제물이 되었다(출 12:27). 주님은 유월절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서 유월절 희생양이 되셨다(고전 5:7).

⑦ 죽임당한 어린 양은 불에 태워졌다(출 12:8,9).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위해서 당해야 하는 맹렬한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하는 것이다.

⑧ '뼈도 꺽지 말라'(출 12:46). 그리스도의 죽음의 방식을 노골적으로 선언한다(요 19:33-36).

⑨ 그 어린 양을 온전히 다 먹으라고 하였다(출 12:8,9). 그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영적 양식이란 것을 교회에 가르치려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중보의 열매를 우리에게 전달하므로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신령한 양식이 되는 것이다"(J. Owen).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며".

여기서 두 가지 요점은 따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곧 어린 양과 그 피다. 그 두 가지를 함께 합해서 보면 모형적으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하신 일의 가치로 보여줘야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 그 신적 격위가 그 인성 제사를 "거룩하게" 하는 "제단"인 것이다.(마 23:19).

성경의 순서는 언제나 이러하다 "보라 ①하나님의 어린 양 ② 세상 죄를 지고 가는"(우리말 개혁 성경에서는 그 순서대로 나와 있지 않음 - 역자저)(요 1;29); "내가 너희 중에서  ① 예수 그리스도와 ②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이라"(고전 2:2); "장로들 사이에 ① 어린 양이 섰는데 ②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계 5:6).

여기에 오늘날 설교자가 따라야 할 믿음의 유추가 있다. 죄인들에게 먼저 선포해야 하는 것이 피가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피를 흘리신 영광스럽고 놀라우신 신인 중보자를 먼저 선포해야 한다.

히브리 사람들은 애굽 사람들과 동일하게 죽음의 신적 보응을 만나게 되었다. 죽음의 사자가 그 긴요할 만한 밤에 무서운 일을 행하여 나갈 때에 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죄의 책임을 지고 있는 자기들과 거룩한 하나님 사이에 무죄한 희생물의 대속적인 죽음을 놓지 않고는 자기들이 거스려 선언된 심판에서 피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효력을 발할 수 없다. 자기들의 선행과 종교적인 여러 가지 의무 감당에 호소해 보았자 충분하지 못했다. 금식하며 밤새도록 기도해 보았어도 소용이 없었다.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며 고백하고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께 울부짖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한 행사들 중 그 어느 것도 그들을 안전케 하지 못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출 12:13). 그것이 진수적인 요구사항인 것을 하나님은 알려주셨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고는 죄를 깨끗케 하거나,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책인 사망의 중벌에서 구해낼 수 없다.

"믿음으로".

또는 더 낫게 번역하면 "믿음에 의하여". 여기서 헬라어는 앞절의 경우와 같다. "그는 유월절을 지켰다". 다시 말하면 그 유월절 제도를 지정하셨고 지키셨다. 구속주께서 스스로 "성만찬"을 제정하셨고 드신 것처럼 말이다. "피 뿌리는 이외에" 이제는 중요한 구별을 강조해야 한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 피 뿌림이 없이(벧전 1:2 참조).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력이 영혼에게 미치지 못한다. 피 "뿌림"은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을 가르킨다. 그리스도의 피 흘림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근거"이다.

피 뿌림은 그 효력을 얻게 하는 방편이다. 출애굽기 12:13에서 집문에 피를 뿌리는 것은 멸하는 자에게 그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표가 되기도 했고, 그 집의 가족들에게 안전함을 보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미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영적으로 "뿌리거나" 적용시키므로 말미암는다.

그것은 상처에 고약을 바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한 잔의 약을 마시는 것이나, 음식을 먹거나, 두루마리를 입는 것에 비유된다. 이 모든 것의 "은혜"는 그것들을 "합당하게 적용"하므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두 가지 방면에서 영원에 "뿌려진다".

첫째, 성령으로 말미암는다(고전 6:12).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 하시고 고난받은 모든 것에 대해 영혼이 가지는 "한 권리"를 내면적으로 믿게 하신다.

둘째로, 믿음으로 말미암는다(행 15:9). 왜냐하면 믿음은 모든 영적 은혜들을 받는 영혼의 손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거듭난 영혼을 부추겨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를 개인적으로 적용하도록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만든다. 이러한 근거 위에서 사도는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고 권면한다.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며".

일차적으로 멸하는 자는 주님 자신이셨다(출 12:12,23). 도구적으로 그 일을 천사가 대대적으로 수해한다(삼하 24:16, 왕하 19:35를 참조 비교하라).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지 못한 자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어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 뿌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안전한 나머지 멸하는 자가 "건드리지도" 못한다 -

멸하는 자가 그들에게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의 죄를 따라 그들을 심판하셨다. 바로는 그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히브리 사람에게서 낳은 아들마다 강에 던지라고 하였던 것이다(출 1:22).

지금은 그들의 장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대적하시는 당신의 행사가 의로움을 입증하셨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이 구절은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편들과 지혜도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 "믿음을 행사"해야 함을 가르친다. 말씀을 듣든지 기도를 하든지, 세례를 받든지, 아니면 주의 만찬에 참여하든지 그 어떠한 기도든지 바르게 사용하려면 믿음을 가지고 해야 한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무엇에든지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보증하지 아니하신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명령을 내리시는 그리스도의 권위에 능동적으로 복종을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행하는 모든 일 가운데서 정확하게 요구된다.

모세의 모범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잘 맞았다. 어린 양을 믿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의무들을 지켜냈다. 유신적인 지혜로는 그것이 불합리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또한 그것이 아무리 불편하고 핍박을 몰고 올지라도, 주님을 의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요 복락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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