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29]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29]

En Hakkore 2024. 6. 7. 15:08

모세의 믿음 1(히 11:28)

우리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진리의 요소적인 국면들을 바로 이 시대에 강조해야 하는데, 그 필요성은 너무나 절실하다. 그 경우가 비극적이라는 말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기 부요함을 자랑했으며, 자기가 가련하고 가난하고 헐벗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오늘날 교회가 큰 소리로 떠벌리는 그 "부요함"들과 비례하여 빛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이론적이고 "세대적인" 진리의 연구가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빛에 큰 증가를 가져온다고들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사단의 교활한 간계일 뿐 아니라(고후 11:24), 사람들의 총명을 어둡게 하여, 마귀 자신의 거짓말이 "놀라운 발견이며" 성경을 풀어 해석하는 것이라고 믿도록 만드는 간사한 술책이다. 뿐만 아니라 현세대에 1세기 전에 교회가 누렸던 진실한 빛을 훨씬 못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통해서 우리가 뜻하는 바는 이러하다. 실제적인 경건과 거룩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믿음있게 두려움없이 설교하는 것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악한 것이 있다. 성경적인 복음전도가 지상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오늘날 설파되는 "복음"은 영혼들을 속이고 부추겨 거짓된 소망을 갖게 만드는 것 뿐이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데도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믿게끔 하는 것은(요 3:36), 비만증 환자에게 의사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아무 탈이 없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다.

"율법" - 율법의 신적 권위와 감해질 수 없는 율법의 요구들, 율법의 영성(율법을 내면적으로 준행하기를 요구하는 것, 율법의 무서운 저주등을 설교하지 않는 것 ; 마 5:22,28) - 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전하는 것을 내어버리는 것이다(롬 3:20, 7:7).

"믿으라 믿으라"고 소리치면서 "회개"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은 구원의 참된 의미를 거짓되게 하는 것이다(눅 24:47, 행 17:30). 그리스도를 주로 승복하여 받아들이기 전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라고 죄인들을 유인한 것은 "거짓된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격이다.

잃어버린 자들에게 먼저 세상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오라"고 종용하는 것은 "교회"를 회심되지 않은 영혼들로 채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지 않아도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주님의 교훈을 거짓되게 하는 것이다(마 11:29).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서 빗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우리는 변명하지 않겠다. 다시 한번 지적해둔다. 우리는 히브리서를 주석하고 그 본문의 것을 단순히 주해하는 것 이상의 일련의 강론집을 쓰려고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우리는 성령께서(기뻐하시는 대로) 독자들의 마음에 직접 오셔서, 각 구절을 독자들의 영혼에(개인적이고 현재적으로) 적용하시기를 바란다.

잡지(원래 이 히브리서 강해가 "성경연구지"라는 잡지에 계속 연재되었음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 역자저)의 독자들 대부분은 "속임받은 영혼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장차 임할 날에 그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중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마취적인 "복음전도"로 잠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단을 읽고 있는 각 사람에게 살아오는 중 내 마음 속에 모세에 대해 여기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 있었는가? 없었다면,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면(갈 6:14), 내가 그리스도의 피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단의 치명적인 속임수이다.

사랑하는이여, 잠시만 더 여러분에게 직접 대놓고 말하도록 허락하라. 우리는 먼저 "당신이 그리스도의 이루신 일을 믿느냐?"고 묻지 않는다. 회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오히려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였느냐"고 묻고 싶다.

자기는 지극히 영적이며 성경을 통해서 예외적으로 잘 배웠다고 생각하는 어떤 계층은 바로 그러한 표현을 비웃고 기각시켜 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사야 27:5, 누가복음 14:32를 보라.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냐"고 묻는 우리의 뜻은, 하나님과 싸우는 일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복종했느냐? 모반의 무기를 버리고 하나님께 복종하기로 정직하고 진지한 마음의 결심을 하였느냐? 자신의 길로 행하는 것이 일종의 방자무도한 행위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자신을 진실로 복종시켰느냐는 것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92.

◆이사야 27장 5절.
"그리하지 아니 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

◆누가복음 14장 32절.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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