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11]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11]

En Hakkore 2024. 6. 6. 11:41

모세 부모들의 믿음 3(히 11:23)

모세 부모들로 하여금 그처럼 담대하게 행하며 왕의 칙령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일축해 버리게 한 것은 무엇이었겠는가? 본문은 그에 대한 명백한 답변을 제시해 주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렇게 행동했다.

만일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아마도 "왕의 명령"은 그들로 하여금 당혹케 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의 목숨이 아까워 모세가 난 것을 왕의 방백들에게 재빨리 알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그 사실을 숨겼다.

아기를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는 지극히 위험하고 두려운 길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인하여 안전한 길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 주제의 특별한 국면은 "믿음의 용기와 담력"인데 여기서 그에 대한 예증을 얻게 된다.

믿음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극복하게 한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 하늘에 속한 은혜의 또 다른 특징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이 하늘에 속한 탁월성을 증거하며, 우리로 하여금 그 은혜를 더하기 위하여 매일같이 기도하도록 부추기는 특징이다.♥

믿음은 믿는 자로 하여금 인간적 공포를 떠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안에 확신하고 안착하게 만드는 영적인 은혜이다. 믿음은 이렇게 선언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이" 믿음이 항상 역사하는 것이 아님은 사실이다. 오히려 그 빛이 불신앙의 구름으로 가리우는 적이 더 많다. 또는 사단이 영혼 속에서 일으키는 음울한 먼지로 그 빛이 잠식당하는 적도 있다. 우리가 "이 믿음"이라 말한 것은, "자기들"의 믿음이 부단히 역사하고 있으며, 의심으로 뒤틀리거나 놀램으로 가득 차는 경우는 드물다고 떠벌이는 신앙고백자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아, 사랑하는이여, 그러한 사람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들의 믿음"이 아니다(딛1:1). 그러한 믿음은 성경의 문자만을 육신적인 생각으로 믿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기 뜻에 따라서 언제라도 그러한 믿음을 행사케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많은 말씀들은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이슬이 중생한 사람들의 마음에 떨어질 때, 그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시 56:3).

하나님이 주시고 보존하시는 믿음의 능력은 실로 크다. 그것은 외적인 행위를 산출할 뿐만 아니라 영혼 안에서의 역사를 일으킨다. 모두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오늘과 같은 세대에는 그 점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지 않다.

믿음은 열정을 통제한다.♥ 불타는 감성의 고삐를 잡고 인내를 이루며, 음울한 것을 걷어내고 평강과 기쁨을 가져 온다. 또한 육신적인 두려움을 제어하고 용기를 북돋운다. 더구나, 믿음은 지독한 시련 속에서도 마음을 지켜 주고 어려운 의무들을 담당케 한다. 뿐만 아니라 믿음은 중요한 유익들을 얻는다.

이 서신을 처음 받았던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 경우가 얼마나 적합하겠는가? 지독한 시련을 받으며 흔들리는 히브리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어 그리스도께 계속 신실하며 따라서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한 것은 얼마나 잘한 일인가!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니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이 말씀 속에는 아마 두 가지 요점이 들어 있을 것이다. 첫째, 그 부모들이 모세가 태어난 것을 전혀 알리지 않았고, 둘째로 그 집의 어느 부분에 그를 숨겨 주었다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부지런히 하나님께 날마다 열렬히 부르짖었을 것이며, 매일 같이 그를 의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모세를 "믿음으로" "숨겼다"는 사실은, 진정한 영적 믿음은 주도면밀하며, 분별 없이 주제넘지 않음을 보여 준다. 비록 믿음이 육신적인 두려움을 이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합법적인 방편들을 사용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환상주의이지 믿음은 아니다. 자신들을 쓸데없이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은 죄악적인 것이다. 믿음은 사도행전 27:31이 너무나 명백히 보여 주듯이 합법적인 방편을 전혀 원수시하지 않는다.

모세를 자기 어머니가 감추어 둔 것으로 말하는 출애굽기 2:2의 본문이다. 이 히브리서 본문은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 모험에 양 부모가 다 관여했으니, 둘 다 그 일에 협력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아므람은 꾀를 내고 계획을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겠고, 요게벳은 실제로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을 것이다.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둘 다 자녀들을 돌보고 훈련하는 데 힘을 합하며, 서로를 도우려 애쓴다.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는 일에 남편과 아내가 서로 하나 되면 그것은 그들의 의무를 복된 성공으로 이끌 길을 마련하는 셈이다.

남편들과 아내들에게 어려운 임무가 주어질 때, 각자 서로에게 가장 합당한 부분과 국면을 맏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함께 멍에를 맨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후사들로서 믿음의 멍에를 메는 데도 함께 하는 것은 복된 일이다.

종교적인 관심을 가지고 자기 자녀들의 삶을 파멸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부패시키는 것들로부터 자녀들을 보전하기 위하여 함께 유익을 추구하며 멍에를 메어야 한다"(M. Henry).♥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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