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08]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08]

En Hakkore 2024. 6. 5. 11:44

요셉의 믿음 4(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이제 우리는 그의 믿음의 "넓이"를 주목해 보기로 하자. 참된 그리스도인은 시온을 향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자기 개인의 풍성함이나 재산보다 "더 귀하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요일 3:14). 요셉도 그러하였다. 임종시는 그가 자기 뼈에 관한 생각보다 장차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정착하게 될 것을 먼저 생각했다. 자기 사랑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하여는 하등의 관심도 없는 텅빈 거짓된 신앙고백자와는 얼마나 다른가.

그는 "자기 자신"의 교단의 발전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넓게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하여 하등의 관심이 없다. 진정한 성도는 결코 그렇지 않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시 137:5,6). 죽는 순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장래의 행복을 깊이 관념하였다.

요셉이 죽어가면서 자기를 생각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의 복락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오, 하나님이시여, 이 책의 저자와 독자들을 좁은 마음과 오무라진 심령으로부터 건지소서. 참된 믿음은, 우리 자신의 영혼이 잘될 뿐만 아니라 크게는 교회 전체가 잘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대제사장 엘리의 며느리가 죽어가면서 보인 또 다른 사랑스러운 본을 보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삼상 4:22) - 자기 시아버지가 죽었다든지 자기 남편이 살해되었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영광이 떠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복된 신뢰는 여기서 요셉이 모형적으로 보여 주는 분의 경우이다. 우리의 보배로우신 구주께서 배반당하시는 바로 그 밤에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실 때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항상 그 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복락이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요셉을 통해서 실증된 참된 믿음의 "넓이"에 있어서 또 다른 국면을 주목해 보기로 하자. 믿음은 하나님께서 자기 성도들에게 개별적으로 주신 약속들을 믿을 뿐 아니라, 집합적으로 교회에 주신 약속들을 붙잡기도 한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일이 심히 쇠약해지는 경우들이 여러 번 있었다. 또 영적으로 낮은 상태에 처할 때도 있었다. 또 훌륭한 지도자들이 하늘나라로 다 부르심 받고 격렬한 핍박이 일어나, 그들이 남기고 간 적은 양떼들이 타격을 입을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는 말씀을 갖고 있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원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하려 애썼다. 그러나 주께서는 사단의 계획을 파쇄시키고 그 정반대의 효력이 나타나도록 하셨다. 오, 이 약속을 "지금" 붙잡고 있는 믿음이여, "원수가 홍수처럼 임할 때 주의 성령께서 그를 막아서리라"(사 59:19).♥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여기서는 창세기 50:25에 기록된 것을 가리킨다. "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이 점은 그의 믿음의 또 다른 특징을 밝힌다. 곧, 그 믿음의 '공적 서약'이다.

요셉의 믿음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자기 마음 속에 감추어 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가 그처럼 오랫 동안 걸출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확신하고 있음을 다른 사람이 알까봐 부끄럽게 여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애굽 사람들 속에서 큰 존영과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지혜와 분별력으로 그의 명성은 여러 나라에 떨쳐 있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과의 모든 동맹을 '공개적으로 기각시켜' 버리는 것이 그에게 더욱 필요하였다. 그렇게 해야만 그의 후손들이 그가 애굽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애굽 사람들을 좋아했고 사랑했다면 자기 무덤이 그들 가운데 있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었다.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이것은 마치 우리 유해가 "명당"에 놓여지느냐 놓여지지 않느냐에 따라서 어떤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미신적인 요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기의 믿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마치 자기가 개인적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지만 자기 해골로는 그리로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그 가나안 땅을 소유한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다.

둘째, 자기 형제들의 소망을 확고히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럼으로써 고센 땅에 있는 좋은 기업에서 마음을 떼도록 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된 구속을 간절히 열망할 마음을 더 예리하게 갖도록 할 참이었다.

셋째, 공적인 하나의 기념비를 세워서 어느 때에나 자기 후손들이 약속의 진리를 상기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요셉이 죽어가면서 요청한 이것이 하나의 '공적 기념'으로 남겨지기를 바랐다는 증거를, 창세기 50:24과 50:25의 어구에 의미 있는 변화가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50:24에서 요셉은 "그 형제에게 이르되"로 되어 있다. 50:25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켰다"(출 13:19 참조). 그는 지파들의 우두머리들을 통해서 전체 백성과 이 조약을 맺어 세대가 흘러도 거기에 매이게 하였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가 아브라함의 은총 입은 후손이라는 이 기념비를 세웠던 것이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맹세하라"고 요청한 것은 본보기의 힘을 예증한다(창 47:31 참조)! 그가 자기 "시체"라고 하는 대신 자기 "해골"(뼈)을 언급하여 말한 것은 이백 년 후에나 그 일이 이루어질 것임을 그는 알았기 때문이다.

그 일에 대한 전체 협약은 '성도들의 교통'의 상징적인 증표였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살다가 죽어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과 끊겨지지만, 하늘에 있는 의인들의 영들에게로 들어간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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