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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105]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05]

En Hakkore 2024. 6. 5. 11:42

요셉의 믿음 1(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22).

요셉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외국 땅 이교도의 나라로 끌려 갔다. 거기서 그는 여러 해 동안 우상숭배 자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그 동안 아마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 중 단 한 사람과도 접촉을 가진 적이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 때에는 읽을 성경도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중 그 어느 것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유의 시험과 시련 중에서도 주 하나님께 대하여 진실하였다. 13년 동안의 옥중 생활도 그를 실망시키지 못했다.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어도 그는 더럽혀지지 않았다. 그 주위에 가득 널려 있는 악한 실례들이 그를 부패시키지 못했다.

신적 은혜의 전능성은 그 은혜를 받는 은총 입은 사람들을 '보존'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요셉이 어린 시절에 경건의 훈련을 받았음을 주의깊게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에게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가. 믿음을 가지고 자녀들을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그들이 외국 땅에 나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믿음이 그들을 지탱해 줄 것이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은, 사도가 여기서 요셉을 주목할 만한 역사 중에서 이상하게 발췌해 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

자기에게 알리실 것을 선언하신 그 하나님에 대한 신실성(창 37:5), 그의 순결(창 39:10), 고통 가운데서의 인내(시 106:18, 19), 그의 지혜와 신중성(창 39:22; 47;14), 하나님을 두려워함(창 42:18), 그의 인휼(창 42:24), 선으로 악을 이김(창 45:10), 자기 아버지를 존경함, 자기 아버지보다 사회적 신분에 있어서 높아졌을 때에도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창 48:12), 자기 아버지에 대한 순종(45:10)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의 주목할 만한 삶 전체는 생략된 채, 마지막 장면만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에서 성령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면, 언뜻 보기에 난제처럼 보이는 그 의문은 대번에 사라질 것이다.

성령께서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난관을 안전하게 뚫고 종국에는 약속된 기업을 차지하게 하는 믿음의 효능과 충분성에 대한 두드러진 실증들을 보여줌으로써, 두려워하고 요동하는 그들을 격려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시다.

이 편지를 처음 받았던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성령께서 요셉의 마지막 순간들을 지적하셔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믿음의 전체 삶을 묘사함에 있어서) 성령께서 그렇게 하셔야 할 보다 광범한 목적이 있다.

믿음은 살아 있을 때뿐 아니라 죽음을 맞아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신자로 하여금 견고케 하는 은혜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풍요로워 보일 수도 있고, 삶을 살아가는 동안 부드럽고 안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최고의 위기를 맞았을 때 그런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시간세계에서 영원세계로 넘어가라 하실 때 그의 마음을 지탱해 줄 것이 무엇인가? "외식자가 많은 소득을 얻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가시면 그의 소망이 무엇인가?" 무지는 공포를 함축할 수 있고, 주정뱅이도 여전히 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참된 평안이나 견고한 확신이나 승리에 찬 기쁨 같은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참된 믿음을 소유한 자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인하여 하나님께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며 죽을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끝이 올 때까지 그 인격의 기능들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셨다면,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 체념해서는 안 되며, 짐승처럼 죽어서도 안 된다. 절대 그럴 수 없다. 바로 그때야말로 무슨 일이든지간에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마지막 기회이다.

그러므로 그는 '범사에 질서 있고 확실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더 새롭게 확고히 잡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으로는 자기를 향하신 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미해야 한다.

창세전부터 자기를 구원하기로 책정하신 아버지와, 자기 대신 순종하사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성자 예수님과 죄와 허물로 죽었을 때 자기를 찾아내시어 새 생명 가운데서 살리시고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으셨고 자기 입에 새 노래를 두신 성령님의 기이한 은혜를 재음미해야 한다.

자기의 모든 순례길에서 자기를 향하여 미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약속을 의지하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스러운 장래를 내다 보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의 영혼과 입에 찬양과 감사가 가득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그리스도인들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크게 존귀함받으실 것이다.

성도가 죽어가는 시간 동안 믿음이 역사하면, 그 자신의 마음이 영적으로 힘을 얻고 위안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존귀함을 받으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확신을 준다. 육적인 사람은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게 될 때 세상에 대하여 잘 말할 수 있다.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는 감히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삶을 내보이며 추천할 엄두를 못 낸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잘 말할 수 있으며, 그의 언약을 다른 사람들에게 권할 수 있다.

야곱이 그러하였다(창 48:15,16). 여호수아도 그러하였다.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수 23:14).

요셉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그는 자기 아들들에게 혈통의 고상함과 애굽의 풍성한 재산을 의지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자기의 아버지에게 데리고 가 "그의" 축복을 받게 하였다(창 48:12).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였는가? 그들로 하여금 눈에 보이지 않는 언약의 특권들에 들어갈 권리를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 요셉에게 있어서 애굽의 부요는 시험의 축복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 이러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자. 그가 이 땅에 있을 때 자기가 그처럼 오랫 동안 누렸던 세상에서의 존귀한 지위를 생각해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속한 일들과 약속된 기업에만 쏠려 있었다.

경건한 모본이 보여 주는 힘을 보라; 요셉은 자기 아버지의 마지막 행동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른다. 높은 자들이나 위에 있는 자들의 선한 본은 그들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큰 힘을 준다 - 그러니 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앞선 사람들은 얼마나 행동에 조심해야 하는가! 우리는 본삼을 만한 것을  따르자(빌 3:17; 히 13:7).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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