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0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07]

En Hakkore 2024. 6. 5. 11:43

요셉의 믿음 3(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우리는 다음으로 그의 믿음의 "힘을 생각해 보자. 성경 난외주에 다른 번역이 쓰여 있는 것을 주의깊은 독자는 발견할 것이다. "믿음으로 요셉은 죽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기억하였다'(우리말 개역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역자주).

헬라어 원문은 두 해석을 다 용납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성령께서 쓰신 그 말씀의 "충만함" 속에는 그 두 의미가 다 들어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매우 결정적이고 복된 것이다. "기억했다"는 말은, 요셉의 생각이 언제나 창세기 15:14-16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라는 번역은, 요셉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소망을 증거했다는 뜻이다.

길고 기념할 만한 생애의 마지막에 선 요셉의 생각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보다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바라는 것들"이 있었다(히 11:1)!

여호와께서 창세기 15장에서 하신 예언의 일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육신적인 이성의 생각으로는, 그 나머지 부분이 이루어지리라는 전망이 매우 희박해 보였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고 공표하였다(창 15:13). 그것은 야곱이 자기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확증되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이 사백 년 동안 괴롭게 할 것임을"(15:13) 선언하셨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바로 앞에서 족장들은 은총을 입어 풍성함을 누렸다(창 45:16-18). 또한 그들을 위해서 그 땅에서 "가장 좋은 땅"이 마련되었다(창 47:6). 거기서 그들은 "지극히 번성했다"(창 47:27).

또한 애굽 사람들이 그들을 어찌나 크게 존경했던지 야곱을 위해서 칠십 일 동안 "애곡"하였다(창 50:3). 요셉 자신이 그들에게 크게 은혜를 베푸는 자로서 기근에서 그들을 건져 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자손들이 그들에게 미움을 받고 압제를 받을 것인가? 아 믿음은 따지지 않고 "믿는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함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15:14).

그것은 출애굽기의 처음 몇 장 속에 기록된 무서운 재앙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가나안)으로 돌아오리니"(15:14, 16).

요셉의 마음은 바로 이것을 내다보고 있다. "진정한" 영적인 믿음이 아니고서야 그것을 어찌 계산할 수 있는가. 만일 그가 죽은 후에(지도자가 없는) 히브리 사람들이 지독하게 고통을 받게 되어 있으며, 그것도 "오랜 기간 동안" 그렇게 된다면, 또 그들이 힘없는 노예들로 낮춰지게 될 것이라면, 그들이 애굽 땅을 떠날 때 "큰 제물을" 모아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리라고 이치적으로 소망할 사람이 누구겠는가?

아,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더디다 할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한다. 믿음은 멀리 내다보는 시야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난관의 언덕과 산을 넘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빛나는 수평선을 쳐다볼 수 있다. 따라서 믿음은 인내의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며 행도하기로 정해진 때를 조용히 기다린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 2:3)는 말씀을 주목한다. 비록 히브리인들이 오랜 기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게 되겠지만, 요셉은 주께서 정하신 때에 그의 높으신 손으로 그들을 이끌어 낼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랑하는이여, 하나님의 "지체하심"은 우리의 기도를 부인하거나 우리의 소망을 조롱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다 -

우리 "자신의" 방식과 때에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참지 못하는 우리의 성격을 다스리려 한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보다더 간절히 주님을 찾도록 깨우치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될 때에 그 긍휼을 받기에 합당한 자들로 만들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순간까지 도우심을 유보시키는  경우가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 때 그리하셨다. 그 아들을 제단에 결박하고 칼을 들어 그를 죽이려 하였을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습을 드러내셨다. 홍해를 건널 때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러하였다(출 14:13).

또한 풍랑을 맞은 제자들에게도 그러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바다를 잔잔케 하시기 전에 "물결이 배에 덮히게 되었다"(마 8:24-26). 옥중의 베드로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그가 사형집행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감옥에서 풀어내셨다(행 12:6-8).

신비한 방식으로 기사를 행하실 때도 역시 그러하신다. 흔히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상황과는 전혀 반대되는 방식으로 그리하신다. 요셉의 삶의 내력은 하나의 두드러진 실례를 제공한다. 그는 먼저 애굽에서 노예가 되었다. 그것은 그가 애굽을 통치하는 처리자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감옥이 궁중으로 가는 길이 될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의 후손들의 경우에도 그러하였다. 벽돌을 두 배나 더 굽게 하면서도 짚을 주지 않았을 때 누가 거기서의 구원을 바라기나 했겠는가! 그렇다. 하나님의 방식은 살과 피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상하다.

또한 진리를 명백히 드러내시기 위해서 실수를 허용하실 때도 간혹 있다. 종노릇한 것이 흔히 자유케 되는 길을 마련하기도 한다. 핍박과 고통 속에 축복을 감추고 있는 적이 흔하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창 50:24). 이 말씀은 요셉의 믿음의 "능력"을 얼마나 명백하고 복되게 드러내는가, 거기에는 일점의 의심이나 망설임이 엿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실 수 없으심과, 하나님께서 자기의 말씀을 "분명히" 이루실 것을 온전히 확신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이루어질 것도 역시 확실하다. "내가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그러므로 죽어가는 성도는 이렇게 외칠 수 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그와 같이 우리의 믿음도 무덤 너머 있는 영광의 부활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다윗처럼 "내 육체도 안전히(소망 중에) 거하리니"(시 16:9).♥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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