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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9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97]

En Hakkore 2024. 6. 5. 11:37

이삭의 믿음 2(히 11:20)

"여호와께서 그(리브가)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 25:23).

이 말씀은 창세기 27장에 기록된 전체 사건을 이해하는 두번째 열쇠를 제공하며, 히브리서 11:20을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에서의 운명을 알리고 계셨음을 여기서 발견한다.

이 계시를 어머니에게 알렸고(그 어머니가 "여호와께 물어보았다", 22절)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았음을 주목하라. 후에 이삭이 그 약속을 익히 알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약속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리브가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한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를 편애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족장적인 제사장이 취할 마지막 종교행위를 베풀고 그 아들들에게 축복을 선언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그녀는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삭이 에서에게 자기를 위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라는 명을 내림을 듣고 - 이삭이 에서에게 그러한 명을 내린 것은 분명히, 에서에 대한 그의 애칭을 더 깊게 하고 싶었고 그럼으로써 전심으로 그를 축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뜻이 무산되겠다는 것을 상상하고는 하나님 앞에서 좋지 아니한 딸이 되게 하는 방도를 쓰고 말았다. 그 일은 아무리 해도 정당할 수 없다. 우리는 그녀가 야곱에게 제안하여 재빨리 받아들이도록 한 그 교묘한 술책을 오래 생각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병든 신앙에 대한 엄숙한 본을 보여 주면서도, 그 약속들을 성취받기 위하여 비정규적인 방식과 그릇된 방편을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할 뿐이다.

그 다음에 에서의 제안은 야곱에게 어떻게 속아 넘어갔는지를 본다. 처음에는 안심치 못하고 의심도 하였지만 야곱의 거짓말을 듣고 그 두려움이 크게 무마되었다. 음성은 야곱의 것임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그의 손을 보니 에서 손 같았다.

자기에게 오래 기다리던 사슴 요리를 가지고 온 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기 위해서 족장이 손의 감각에 의지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처량한가. 그 모습은 우리 마음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크게 말한다.

육체의 정욕에 굴복하는 자는 영적인 성향을 해치며 자기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마귀에게 활짝 문을 열어 놓아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도록 만든다! 본성적인 감성과 감정으로 하나님의 계시된 뜻의 요구를 묵살하도록 하는 사람은 결국 비천한 상태로 빠져들어 갈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영적인 원수가 자기 가족일 경우가 얼마나 흔한가, 이삭은 지혜롭지 못하게 에서를 사랑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어려운 질문에 봉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알리신 뜻을 일부러 대적하였을까?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주기로 작정하셨음을 알고 있는 것을 에서에게 주려고 했던 것은 도덕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인가? "이삭을 편들어 어떤 핑게를 댄다 할지라도 이삭은 크게 두 가지 일에서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첫째, 에서를 무절제하게 사랑했다는 것이다(에서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별미를 먹는 것과 같은 일로 하나님의 뜻을 경홀히 여겼다(창 25:28).

둘째, 그는 자기 아내가 아들들에 대하여 받은 말씀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그가 그것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그가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도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 거룩한 사람이 하나님의 결정적인 뜻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뜻에 위배되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중을 부지런히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J. Owen).♥

우리는 그 탁월한 청교도가 지적하는 요점들을 진심으로 찬동한다. 이 경우에 있어서 이삭의 행실은 자기의 지상의 순례길이 거의 마쳐가려 한다는 것을 안 하나님의 자녀다운 행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로 하여금 그의 행실을 가장 악하게 해석하지 못하도록 한다.

에서를 사랑한 이삭의 애정은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어떤 분명한 성경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의도적으로 항거하여 일부러 범죄했다고 생각할 근거가 없다. 오히려 리브가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었다고 결론내려야 할 것이다 -

그의 육신적인 시력뿐 아니라 그의 영적인 분별력도 희미하였다! 리브가와 야곱이 합당치 못하게 취한 술책을 보고, 그들의 노력은 뜨거운 육신이 정열로나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방해하려는 목적에서 되어진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무산될까 겁이나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좋은 뜻에서 출발하였으나 잘못 오도된 의양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두려움은 사무엘상 6:6의 웃사를 생각나게 한다.

성령께서 창세기 27장에서 우리를 위해서 신실하게 드리워 주신 한 밝은 조명이 음침한 그림 가운데 33절 속에서 드러나 보인다. 이삭이 야곱에게 주요한 축복을 선언하는 직후에, 자기 아버지를 위해서 준비한 별미를 가지고 장막으로 들어왔다.

이삭은 그제야 자기가 속은 줄을 알았다. 그래서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다". 그러면 그가 야곱의 속임수에 크게 흔들리고 있었단 말인가? 절대 아니다. 어느 주석가가 암시했듯이, 성미 급한 에서의 손에 고통을 당할까봐 무서워했는가? 아니다. 이삭이 한 다음의 말이 그러한 이론을 무산시켜 버린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어 있었음을 인식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섭리적으로 간섭하셨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삭은 영혼의 깊은 데에까지 두려워 떨었던 것이다.♥

영이 육체를 어떻게 이기는가를 보면 참 복되다. 이삭은 야곱의 머리에 성난 저주를 퍼부어 대기는커녕,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에서를 향한 육신적인 편애를 극복한 믿음의 언어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이 변할 수 없으며 항거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인정한 행동이었다.

그는 하나님은 일단 마음을 정하시면 어느 누구도 그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인식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이 있으나 주의 뜻이 설 것이라는 사실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잠 19:21).

에서가 아무리 울어대도 그 족장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들어가 빛을 비추었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이 하나님 자신의 정한 뜻을 이루도록 조치하신 마당에서 이삭은 반석처럼 꿈쩍이지 않았다. 의는 넘어질지라도 아주 엎드러질 수 없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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