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93]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93]

En Hakkore 2024. 6. 4. 12:19

아브라함의 믿음 8(히 11:17~19)

하나님의 말씀은 조각내어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통채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감동하고, 말씀의 각 부분이 산출해 낼 것이 틀림없는 성향들을 우리 속에 불러 일으키게 해야 한다.

만일 약속이 위로와 기쁨을 일으킨다면, 계명들은 사랑과 두려움과 순종을 일으킬 것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의 훈계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일부이다. 우리더러 그리스도를 완전충분하신 구세주로 믿으라고 명한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고 우리의 갈 길을 안내할 하나님의 계명을 믿으라고 명한다.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이 존재한다. 지시를 듣지 않으면 약속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복음을 믿는 것보다 율법을 승인하는 것이 우선한다. 하나님의 명령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요일 5:3).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속주로 받아들이기 전에 율법 제정자로 받아들여야 한다(사 33:22).

자기 아들을 기꺼이 잡아 제사드리려는 아브라함의 자세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반대하고 자기들의 악하고 쓸데없는 탐욕을 죽여 희생시키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정죄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이 말씀은, 우리의 생각 속에 주 예수님과 서로 겨루고 있는 모든 것에서 진지하고 결연하게 돌아서지 않는 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사 55:7).

세상이 여전히 우리 마음을 지배한다면 구원받게 해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장차 올 진노에서 우리를 건질 뿐 아니라, 현재에도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쳐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의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도록" 해준다(딛 2:12).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줄로 생각한지라".

우리는 여기서 이 경우 아브라함의 믿음의 직접적인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엿보게 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주께서 자기 약속이 실패로 돌아가게 하는 것보다는 이적을 행하실 것을 온전히 확신했다.

아,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마음이 잠잠해지고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충분성을 묵상함으로 말미암는다.♥ 시험을 받아 영혼이 의심과 두려움으로 무거워질 때마다, 하나님의 속성, 특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숙고하면 큰 소생함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믿음의 특별한 지주목이다. 모든 세대마다 성도들의 믿음은 바로 그것을 통해서 크게 힘을 얻었다. 세 히브리 사람들에게도 그러하였다.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단 3:17)!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 10:27). 모든 세상과 지옥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말씀을 이루실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속성들 가운데 또 다른 요점을 엿본다. 곧 하나님께 사건들을 위탁한다는 점이다. 육신적인 생각은 해결책이 눈앞에 보이기까지는 쉼을 얻지 못한다. 난제를 빠져나갈 길을 보기까지는 쉴 수가 없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 앞에 긴급한 사항을 아뢰며 그에게 짐을 부리고, 그 해결책을 하나님께 조용히 맡긴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 16:3). 믿음으로 말미암아 진실로 그렇게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영혼을 곤궁에 빠뜨릴 마음의 여러 가지 오고 가는 생각들과 영혼의 여러 가지 동요들에 대하여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여기 아브라함도 사건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가 이삭을 죽일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 점이 신령한 믿음의 본질이다. 우리의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고. 그것이 어떤 경로로 이루어질지 깨닫거나 상상할 수 없다 할지라도 약속된 구원을 조용히 기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령한 믿음의 본질이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시 37:5)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얼마나 적은 믿음이 행사되고 있는가. 그들은 로마니즘(Romanism)의 급속한 팽배와 프로테스탄티즘의 배도와 더불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센 악의 조류에 완전히 휩쓸려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결론내린다.

그러한 사람은 과거의 역사를 모르는 것 같다. 구약시대나 이 시대의 여러 시기들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악했었다. 더구나, 참으로 무서운 염세론자들이 하나님을 "추방했다". 하나님이 현재의 상황에 "대처하실 수" 없는가? 마지못해 "그럴 수 있겠지"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렇게 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는가?"라는 의문으로 말끝을 흐린다. 어디에? 이사야 59:19에 있지 않은가.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이미 그렇게 아니하셨다 할지라도!) - 그것을 믿는 사람만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아, 사랑하는이여, 거짓말하실 수 없는 복된 확언을 사려깊게 숙고하라. 그런 다음에 그대의 '불신앙'을 부끄럽게 여기며 고개를 숙이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많은 약속을 이루지 못하게 죽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어둡고 무서워 보여도 오늘날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믿음의 조상이 자기 품에서 칼을 뽑아 '모든' 약속 성취가 걸려 있는 자의 목숨을 끊어야 할 때처럼 곤란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나님 자신의 순결성을 보존할 하나님의 신실함과 능력을 의뢰했다.

우리도 이 현실적인 위기에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만일 우리가 '진실로' 의뢰한다면, 혹독한 시련을 받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 당도했을 때 가졌던 모세의 믿음과, 바벨론의 풀무불 속에 던져졌을 때의 세 히브리 사람들이 가졌던 믿음에 반응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그 진정한 믿음에도 반응을 나타내실 것이다.

형제들이여, 신분을 버리고, 무릎을 꿇고 성령을 새롭게 부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라. 인간의 극한 한계는 언제나 하나님의 기회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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