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89]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89]

En Hakkore 2024. 6. 4. 12:17

아브라함의 믿음 4(히 11:17~19)

아브라함이 시험받을 때가 언제인지 주목하였으니 이제는 그의 시험의 "혹독성"을 생각해 보자.♥ 먼저 "그 행위"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소떼나 양떼가 아닌 인간을 도살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것도 자기의 신실한 종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그렇게 죽이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것도 그 아들을 집에서 쫓아내라든지 가나안에서 다른 데로 보내라는 것이 아니다. 산 자의 땅에서 그를 끊어버리라는 명령이었다.

아브라함이 명령받은 그 일은 명령을 내린 자의 권위를 빼놓고는 어떠한 정당한 이유도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명령이야말로 본성적 느낌으로 볼 때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도록 내버려 주어야 할 뿐 아니라, 스스로 그를 죽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죄짓기는커녕(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썩 훌륭하게 의무를 잘 감당했던 사랑하는 순종의 아들을 죽여야만 한다. 그 전이나 그 이후에 그러한 요구를 받은 인간이 있는가!

둘째로, "그 제사를 드리는 자"를 생각해 보자.♥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을 특별한 성격으로 나타내고 있다. "약속을 받은 자"라고 하였는데, 그 말은 이 구절을 해석하는 열쇠와 같은 소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이삭을 따라 나올 그의 후손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실 것을 아브라함에게 선언하셨다(창 17:9).

다름 아닌 바로 그 이삭의 후손"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게 될 참이었다(창 12:7).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는 것도 바로 그 이삭으로 말미암는다(창 17:7). 그러므로 육신의 혈통대로 하면 그리스도가 바로 그 이삭으로 말미암아 나오시게 된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러한 약속들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들을 신뢰했고, 확고히 믿었으며, 그 약속들이 이루어질 것을 온전히 기대했다.♥ 그 약속들이 성취되려면 이삭의 생명이 보존되어야 한다 - 적어도 이삭이 아들을 낳기까지는 보존되어야 한다. 그러니 그를 잡아 제사 드리는 일은 그 모든 약속들을 무효화시키는 것 같았고, 그 약속 성취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이 소절은 여러 가지의 약속 조항과 메시야가 그의 허리에서 날 것에 대한 약속들의 계시를 지시할 뿐 아니라, 그 약속들을 받고 충성스럽게 그 약속을 신빙했음을 지시한다. 아브라함은 사적인 신자의 입장에서 그 약속을 받았을 뿐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한 신용보증자로서 약속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초기 시대에 다른 사람들 대신 하나님의 뜻의 계시를 받을 탁월한 인물들을 일으키셨다. 아브라함이 그러한 경우이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한 사랑하는 아버지로서뿐 아니라, 믿는 자들의 아버지라는 공적 임물로서 그 약속을 받은 자로 제시되고 있다 - 곧 약속을 맡길 자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선택하셨다는 말이다"(T. Manron).

바로 여기에 그 시험의 "영적" 미묘함이 존재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인다면 자기가 맡은 약속에 대해서 신실한 것일까? 그러한 약속을 이룰 모든 소망의 지대석을 자기 마음대로 옮기는 것이 아닐까?

매튜 헨리(M.Henry)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이 시험의 명령을 받았을 때를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여 말하였다.

"이 이삭으로 말미암아 그의 가정이 이룩될 것이라는 약속, 이삭은 메시야의 혈통상의 선조들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며 모든 민족이 그 메시야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직후에, 그 이삭을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볼 때는 자기의 가족을 멸하고 끊어 버리라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들을 무효화시키며, 그리스도가 오시지 못하게 하며, 전체 진리를 파괴하며, 자신의 영혼과 구원의 소망을 희생하며, 일격에 하나님의 교회를 끊어 버리라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정말로 최고의 무시무시한 시련이었다!" 만일 이삭이 죽는다면 "그 모든" 것들은 다 상실될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그 족장의 믿음을 그처럼 시험하실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은혜의 효력을 더 잘 알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무거운 것을 사슬 위에 얹어 놓으면 그 사슬이 약한지 강한지를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여러 상황에 놓으심으로써 그들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밝히신다 -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믿음이 확실한지 그렇지 못한지 밝힌다는 말씀이다.♥ 여호와께서는 히스기야를 시험하여 그가 연약하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대하 32:31). 욥을 시험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욥을 죽이실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할 것임을 나타내셨다.

둘째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다. 곧 다른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본을 보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모든 세대의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은혜를 부여하셨는지를 알게 하신 것이다 - 아브라함은 얼마나 훌륭한 "아버지요" "본"인가(W. Gouge로부터 축약 인용).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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