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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88]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88]

En Hakkore 2024. 6. 4. 12:17

아브라함의 믿음 3(히 11:17~19)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심으로써 그의 믿음을 맹렬히 타는 화염 속에 들어가게 하였던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이삭을 향하여 초점이 모여져 있는 그의 "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그의 독생자를 죽이라는 명령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할 만했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추방당했고, 이삭의 후손들만이 복된 씨앗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복된 후손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오랫 동안 아이 없이 지내고 사라의 태가 죽었을 그때에 주어졌다. 그러므로 사라가 그 외에는 자식을 가졌을 법하지는 않다.

그 당시 이삭 자신도 나이가 들게 되었고, 그를 죽이는 것이 그의 모든 소망을 잘라 버리는 것이 될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신적 계명들과 약속들을 조화시킬 수 있었는가? 그의 아들이요 후사 된 이삭을 제사드리는 것은 자기의 본성적인 성향에 있어서도 위배되며, 뿐만 아니라 육신 이상의 차원에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자기 백성들의 믿음을 그런 식으로 시험하신다. 본성적 성향에 위배되고 육신적 이성에 배치되는 순종의 행동을 요구하신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에게 생각을 빼앗기고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 6:14)는 마음을 찌르는 말씀에 저촉되는지! 그리스도가 높여지지 아니하는 "교회"에 다니는 하나님의 자녀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너희는 저희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고후 6:17)는 저 신적 명령을 지키는 일은, 육체로 가깝고 사랑스러운 자들을 떠나는 것을 함축했다. 그러나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아무리 큰 아픔을 수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삭을 바치라는 것과 같은 시험을 우리는 언제 받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청교도인 맨튼(Manton)은 세 가지 답변을 제시한다.

첫째, 가까운 친척들이 우리를 떠나게 되는 섭리의 격렬한 때에 '복종'해야 될 경우이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기분에 있는 우리를 어떻게 때릴지를 아신다. 우리의 사랑이 걸려 있는 곳에서 가장 큰 시련이 닥쳐올 것이다.

둘째, 선한 양심을 위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자기 부인"의 경우이다. 우리는 작은 사소한 것들과도 관계를 끊어야 하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것과도 관계를 끊어야 할 때가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버리라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하나님께서는 본 강해자에게 그것을 요구하셨다)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우리의 목숨을 조금도 아까운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행 20:24).

셋째, 우리의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정욕을 "죽이는"데서 이삭을 버리는 것과 같은 시련이 다가온다. 오른손을 자르라든지 "오른눈"을 빼라는 주님의 말씀이 바로 그 점을 의미한다(마 5:29, 30).

그러면 우리는 이제 아브라함이 그처럼 시험을 받을 "때"가 언제인지 주목해 보자. 성령께서는 창세기 22:1에서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때를 강조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 두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첫째, 일반적인 것으로서 아브라함이 견뎌냈던 이전의 모든 시련을 가리킨다는 말이다 -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장막 속에서 우거하며, 약속된 기업을 얻기 위해서 참으로 오래 기다린 일을 의미한다. 큰 고통의 싸움을 겪은 지금에 와서 훨씬 더 냉혹한 시련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자녀들을 교육하실 때 조금씩 조금씩 가르치신다. 은혜안에서 성장해 갈수록 더 어려운 임무를 떠맡기시고, 더 깊은 물을 건너게 하신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더 크게 믿고 있는 표증을 나타낼 기회가 더 넓어지게 된다.♥ 전투의 최전선에는 신참이 아닌 오랜 고침병을 세운다.

사랑하는이여, 하나님께서 수년 전보다 더 혹독한 시련을 주고 계신다면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말라.

둘째로, 창세기 22:1에서는 보다 특별하게 앞장에서 기록된 사건을 가리킨다. 곧 이적적인 이삭의 탄생, 이삭의 젖뗄 때 아브라함이 베푼 큰 잔치(8절), 이스마엘을 내 쫓은 일(14절) 등이 앞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 족장의 기쁨의 잔은 가득 찼다. 그의 장래는 가장 전도양양해 보였다. 구름 한점도 없는 맑은 지평선 같았다. 가장 어려운 시험이 그에게 각쳐온 것은 마치 맑은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 욥이 가진 모든 것을 사단의 손에 넘겨 주셨던 것도 "완전한 사람이요 의로운 사람"이라고 선언하신 직후였다(욥 1:8,12). 바울이 "육체의 가시 곧 그를 찌르도록 한 사단의 사자"를 받은 것도 "받은 계시가 많은 이른바 셋째 하늘에 끌려 올라갔을 때였던 것이다"(고후 12:1-17).

약한 손으로, 내리 누르는 모든 것을 지탱할 은혜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 옛 처술가가 잘 말했다. "어느 나무든지 땅 위에 있는 나무에는 동주리를 틀지 말라. 왜냐하면 숲 전체가 다 벌목될 운명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만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우리가 앞에서 방금 본 사실에 비추어 보면, 혹독한 시련을 맞을 "각오"를 하며 더 나아가서 그 시련을 대처할 은혜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장래사를 삼가 들으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는가(사 42:23)? 장래의 시련을 조용히 각오하면 할수록 그 시련이 닥쳐올 때 덜 넘어지고 덜 놀라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 4:12).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90

◆사도행전 20장 24전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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