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8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87]

En Hakkore 2024. 6. 4. 12:16

아브라함의 믿음 2(히 11:17~19)

둘째, "아브라함이 실제로 이삭을 죽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다고" 말하는 것이 진리일 수 있는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 기꺼운 마음을 가지고 그 목적을 향하여 나아갔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을 보고 행할 뜻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이삭을 "드렸던" 것이다. 그의 마음 속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고, 정직한 열심에 조금도 흠이 없었다. 그는 사흘길을 걸어서 하나님이 제사드리라고 하신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삭을 묶어 제단 위에 놓았다. 그런 다음 칼을 뽑아 그를 죽이려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의지를 행실로 간주하신 것이다. 이 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받아들이는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원리를 실증해 준다. 하나님의 율법의 차원은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인격적이고 영구적이고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그러한 순종을 드릴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범사에 중심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려는 "간절한 소원"과 그렇게 하려는 "정직하고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면, 하나님은 그러한 의지를 행실로 은혜롭게 받아주신다.♥

같은 복된 사실을 예증하는 고린도후서 8:12을 주의깊게 숙고해보라. 그리고 13:18의 "행하려 한다"(willing)는 말을 주목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2).

셋째, 창세기 22:1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지라" 라는 진술 또는 여기 히브리서 본문에서 "시험받을 때에"(연단받을 때에)라는 말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히브리 원어나 헬라어 모두 '연단받기 위하여' 라는 의미를 가진다. "구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충성과 순종을 확인하고 증명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W. Perkins).

오히려 하나님의 종들이 자신과 자기들의 동료들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기회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젊은 부자 관원에게 "가서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 19:21)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증험하신다. 또 주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실 때 그 가나안 여인을 증험했던 것이다(마 15:26).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사실임을 이해하고 파악하려면, 주께서 "내 친구"로 부르시기까지 높여 주셨던 사람에게 적용하신 그 시험의 본질을 보다 면밀히 탐사해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실 때, 그 명령 속에는 다양하고 여러 특징적인 요점들이 담겨져 있다.

곧 그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충성하는지를 시험하는 시금석이었고, 과연 하나님과 이삭 중에서 사실은 누구를 더 사랑하는가를 알아 볼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 또한 그 속에 더 강한 것이 무엇이었나를 시험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곧 은혜가 더 강하냐 죄가 더 강하냐를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의 "믿음"을 시험하는 시금석이었다.

육신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본성적인 여러 애정들이 혹독하게 시험당하는 것 외에 더 많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물은 자기 자신의 수준 이상으로 올라 뛸 수 없다. 육신적인 사람들은 신령한 일들을 분변해 낼 도리가 없다.♥

그러나 히브리서 11:17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복종하여 이삭을 드렸다"고 말하지 않음을 면밀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순종하느라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최상의 사랑에서 자기의 아들을 드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러한 경우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성령께서 선언하시는 것을 보라. 그 족장이 행동한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았다"고 선언한다. 또한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고 선언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현대 주석가들은 성령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육신적인 감성에 젖어 이 요점을 그만 다 놓쳐 버리고 만다. 이 요점이야말로 이 구절의 가장 중요한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특별히 그 점에 대해서 주목해 보기로 하자.

Arthur W. Pink히브리서 강해 II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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