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82]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82]

En Hakkore 2024. 6. 4. 12:13

믿음의 상급 2(히 11:15,16)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이 말씀과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말씀 사이에는 삼중적인 연관이 존재한다.

첫째, 사도는 13절 초두에서 자기가 언급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그는 히브리 사람들이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집중시키도록 하고 있다) "믿음으로 죽었다"고 확언했다. 그 다음부터 16절 마지막까지의 말씀 속에서 어떻게 그런 주장을 했는지 그 증거를 제시한다.

둘째, 사도는 14절에서 시작한 추론을 15절에 계속해 나간다. 그 족장들의 고백은 그들의 마음이 하늘에 가 있었음을 명백히 한다. 갈대아로 돌아가기를 싫어한 싫어한 사실에서 그 점은 더욱 확증된다.

셋째, 사도는 반대 주장을 예기하면서 그 주장을 미리 논박한다. 곧, 하나님께서 또 다른 땅(가나안)에 거주하라고 명령하신 길 보니 그들은 그 땅에서 "외국인"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마음으로 "외국인과 나그네" 였다. 그들의 몸만 아니라 마음도 갈대아에서 떠나 있었다. 그 조상이 낯선 땅에 머물렀던 것은 순전히 자기들 편에서 원하여 된 일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실질적인 난제의 핵심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이끌어 오실 때"(요 6:44). 그 사람의 의지에 억지를 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구권을 행사하면서도 사람의 자유 의지를 다치지 않게 하신다. 그들은 그 점을 알지 못한다.♥

그 두 가지 사실은 진리이며,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단계에서 유익한 것이다. 회심 자체만 놓고 따지면 하나님의 은혜의 강력한 작용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심이란 인간 편에서의 자유로운 행위이기도 하다.

하나님에 의해서 어둠에서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회심할 때 자기들의 전존재를 하나님께 복종시키며, 육체와 세상과 마귀를 버리고 그것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간단없는 투쟁을 선언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회심 때에 일어난 일이 항상 계속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회심 때에 한 서원을 이행하며 그 서원을 실제로 옮기는 일을 끊임없이 행하는 것이다.♥

회심이 있고 나서부터 즉각적으로 그 영혼 속에서는 격렬한 투쟁이 일어난다. 마귀는 죄의 쾌락과 세상의 매혹을 보여줌으로써 자기가 사로잡았던 자를 놓치지 않으려 하며, 그러한 세상적인 것들을 팽개치고 그리스도의 계명을 엄격하게 지켜 나가며 더 이상 행복해지지를 않는다고 영혼에게 속삭인다.

다른 한편에선 성령이 계셔서, 죄의 삯은 사망이며 세상은 멸망받을 수 밖에 없고, 죄를 끊고 세상을 버리지 않는 한,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신다. 더 나아가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온 마음을 드리지 않으면 "구원의 길"에 들어갈 수 없을을 강하게 인식시키신다.♥

자기 생각이 떠오르는 여러 가지 갈등하는 생각들 속에서 지쳐 있는 영혼을 향하여 혼자서 "계산하라"고 명령하신다(눅 14:28). 그리고 사단이 미끼로 주는 것들과 그리스도인이 절제해야 할 여러 가지 사항들을 잘 달아보고, 그 둘 사이에서 하나를 분명히 선택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다.

그렇다고 사람이 스스로 속에서 악을 거부하고 선을 선택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또 사람이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신다는 뜻도 아니다. 그리고 사단의 시험이 성령의 확신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아니다.♥

'우리'의 결정이 그 둘 사이의 경우를 바꾸어 놓는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다. 또 본 강해자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다.

죄는 사람으로부터 선을 행할 "모든 능력"을 박탈해 갔다. 그러나 사람이 선을 행해야 할 "당위적 책임"을 없애 버린 것은 아니다. 모든 피조물의 운명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의해서 확정되어 달라질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피조물들이 무책임한 기계가 되도록까지 그 운명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작용은 불가항력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령의 작용이 인간 의지에 억지를 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고 주권적인 은혜에 의한 것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심 자체만 놓고 따져 보면 사람의 자발적인 행동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의식적으로 자신을 자원하여 복종시키는 행동인 것이다.♥

이제 동일한 여러 요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 속에 들어와 작용한다. 틀림없이 그렇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가 시작할 때 가졌던 방식을 점진적으로 계속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는 한 번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렸다고 느낄 때마다 회개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반복이 필요 없는 단회적인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요한복음 3:16의 "믿다"는 말과 베드로전서 2:4의 "나아오다"는 말이 분명히 보여 주듯이 부단하게 계속되어야 할 일이다.♥

그처럼 세상을 버리는 일도 매일 일어나야 한다. 회심 전에 우리 마음을 빼앗았던 것들이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극히 조심하지 않거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서 뜨거워지고 온유해 지지 않으면, 그것들이 금방 우리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를 시험하려고 벼르고 있다. 사단을 대적할 은혜를 열심히  구하지 않으면 그 사단은 우리를 쓰러뜨리고 말 것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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