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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64] 죄와 패배와 심판(수 7:1-26)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64] 죄와 패배와 심판(수 7:1-26)

En Hakkore 2024. 6. 2. 09:24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신 11:22, 23).

이 교훈이 여리고에서 실질적인 예를 통해 복되게 제시되었고, 또한 아이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제시되었다. 전자는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서 기록되었고, 후자는 우리로 하여금 가슴에 새겨야 할 지엄한 경고로써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새겨야 할 첫 번째 사실 - 여리고에서의 승리 직후에 아이에서의 패배를 대하면서 -은 하나님이 유별나게 복 주시고 번성하기로 하셨을 때보다 하나님이 백성이 교만과 건방진 자세를 취하게 될 위험이 커지는 경우가 절대로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의 은혜가 성도에게 생생하게 역사하여 그 마음에 활기가 가득할 때만큼 더욱 면밀히 주께 온전히 의지하여 처신해야 할 필요가 절실한 때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를 신뢰하는 자세가 끼어들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계속해서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시는 그분에게가 아니라 본래 주어진 은혜 자체를 더 의지하게 된다.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강하고, 우리의 마음이 아무리 기쁘고, 우리의 은혜가 아무리 에너지가 넘쳐도, 속사람이 새롭게 은혜를 공급받기를 바라고 사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있는 은혜들이 단 한 시간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직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실제로 의식하는 처지에 있어야만 우리가 진정 강한 법이다. 마치 걸인(乞人)이 빈손으로 계속 내어밀듯이 해야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빌 1:19)을 받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여호와께 다음과 같이 탄식하실 기회를 얼마나 자주 드리는지 모른다.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내 스스로를 충족히 여기는 자세로)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렘 22:21).

이스라엘이 아이에서 패배한 은밀한 원인은 바로 은밀하게 여호와를 향해 악한 범죄를 저지른 아간의 죄에 있었으며(수 7:1),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에서 드러나듯이 그것은 여호와의 진노를 촉발시킬만한 극히 엄숙하고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 경우 여호와의 불쾌하심은 그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기들의 지혜와 힘으로 행하도록 내버려두셔서 결국, 재난밖에 아무 결과도 얻지 못하도록 하신 데에서 잘 드러났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께서 근심하지 않으시는 상태로 회중 가운데에서 역사하시면 그가 그 지도자들과 회원들의 생각들을 지도하셔서 지혜롭고도 어울리는 처신을 하도록 하시지만, 반대로 성령께서 가벼이 여김을 받으시면 그분의 은혜로운 역사하심이 뒤로 물려지고 그들이 육체의 에너지로 행하도록 내버려져서 결국, 주께 욕이 되고 그들 자신도 실패하고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는 중요한 진리를 실제적인 사례로 접하게 된다 여기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아간의 범죄라는 감추어진 뿌리로부터 아이 성 싸움의 대패라는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원인들이 자라난 것이다. 교만과 건방짐이 역사하고 있었다. 아이를 멸시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들 스스로도 무너뜨릴 수 있는 손쉬운 먹잇감으로 보았으나(3절), 오히려 그들 자신이 무너진 것이다.

이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 원수들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실수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의 영적 원수들의 힘이 너무나 커서 우리를 압도한다는 것을 진정 깨달을 때에 비로소 여호와의 도우심과 그분의 힘의 역사를 진정 구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여호수아는 그 아이성을 무시하는 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수 7:4).

그런데 그게 육신적인 자기 과신의 필연적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바로 이것이었다.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수 7:4).

굉장한 구경거리였다!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처지를 떠난 결과가 어떤 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우리 자신의 방법들을 따를 때에 일어나는 결과를 잘 주목하기 바란다. 그들 혼자 내버려지니, 이 사람들의 용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오직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게" 된다(엡 6:13). 그렇지 않고 육체의 팔에 기대면, 실패가 기정사실이 되고 만다.

이 삼천 명의 이스라엘 용사들이 이방 사람들 앞에서 공포에 질려버리다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다. 특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는 6장 마지막의 진술에 곧바로 이어서 그런 안타까운 기록이 이어지니 더욱 그렇다.

병졸들의 그 치욕스런 패배가 과연 이스라엘의 대장군의 이름과 명성에 어떤 결과를 미쳤겠는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죄악된 실패들이 우리 자신과 우리와 관계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그것들이 우리의 구원자 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실추시킨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멘🫰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