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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62] 죄와 패배와 심판(수 7:1-26)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62] 죄와 패배와 심판(수 7:1-26)

En Hakkore 2024. 6. 2. 09:23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수 7:3).

이런 교만에 가득 찬 언어가 최초의 정탐꾼들의 언어와 얼마나 다른지 모른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도다"(수 2:24).

승리를 거둔 다음 태만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수단을 온전히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무턱대고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일을 해주시기를 바라고 기댈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여리고 성 싸움에서는 온 이스라엘이 싸움터에 모였다. 아무도 장막에 남아 있지 않았고, 멀리서 구경꾼으로 바라보기만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인력낭비"로 보였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요구하셨고, 그들이 순종할 때에 승리를 주셨다. 그 일은 다가올 일에 대한 전례가 되었다.

그러나 육신적인 지혜가 끼어들었다. 아이는 규모가 훨씬 작은 성으로 보였고, 따라서 큰 규모의 병력이 없어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자기를 신뢰하는 자세로 보니 손쉽게 승리할 것 같았고, 그러니 구태여 군대를 다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을 위해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목도하는 것을 이스라엘의 복된 특권으로 여기지 않고, 이 사람들을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혹은 다른 곳에서 여덟 차례에 걸쳐서 번역된 것처럼 "귀찮게 하지 말고"(구약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타락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리켜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말 1:13)라고 말한 것처럼) 라고 말한 것이다.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아갔더라"(수 7:4).

지극히 엄숙한 일이다.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자들이 그들 홀로 있을 때의 모습을 보여 주니 말이다. "지극히 훌륭한 자들"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는 육체의 냄새를 너무 많이 풍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극히 사랑받는 자들"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어떤 특권들을 누려왔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되었든,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요, 따라서 그분의 보존하시는 은혜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존재들이다. 우리 중 누구에게서든 그 은혜가 단 한시간이라도 사라지면, 실패와 죄의 비참한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탱시키시는 성령께서 이제 잠시 여호수아에게 물러갔고(왜 그랬는지는 뒤에 말하겠다). 그러니 그는 자연인이 하듯 그렇게 아랫사람들의 조언을 취하여 육신적인 방식을 따르고 만 것이다.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하지 못할 것이라"(왕상 20:11) 라며 그들을 꾸짖어야 옳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의 육신적인 방책을 취한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런 일을 행했다는 것은 더욱 서글픈 일이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명확한 지침이 그에게 주어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민 27:18-21).

아뿔싸! 아간의 범죄의 악한 누룩이 역사하여 "전부 부풀게" 하고, 모든 동료를 은밀하게 더럽히고 있었다. 여호와의 뜻을 구하지 않음으로, 여호수아는 이제 영적인 지각을 잃어버렸고, 그리하여 그의 앞에 제시되는 계획의 육신적인 악함을 분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계획이 여리고에서 주신 하나님의 계획의 패턴과 전연 다르다는 것을 즉시 간파했어야 했다. 여리고에서는 모든 일 하나하나를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진행했다.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했고,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도구의 사용을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온 회중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담당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도, 그분의 개입에 의존하는 것도 전혀 없었고, 무장한 일부 군대만으로 그 일 전체를 행하기에 충족하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대다수의 군대는 한가하게 놀았고, 이스라엘 회중은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친히 목도했고, 그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여호수아가 취한 계획은 하나님의 의도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라는 교훈이 얼마나 엄숙하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목회자가 교회 직분자들의 육신적인 권고에 개의치 말고 오직 다윗처럼,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시 62:5) 라고 말해야 한다는 경고를 이 사건에서 접하게 된다.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갈 1:16)한 사도를 본받으라. 여호와께 인정을 받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무어라 말하든 전혀 상관없다. 사람들이 제안하는 것이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다른 누구에게도 말고 오직 주께만 명령을 받으라. 아멘!

가나안 정복 전쟁의 시초에 여호수아는 이미, 여호와께서 온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시기까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강 동편의 자기들의 기업에 들어가지 말고 "이쪽 땅에 머무르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수 1:12-15).

곧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고 승리를 얻을 때까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가 다 하나가 되어 싸움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따르는 계획은 이스라엘을 갈라놓고 하나됨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육신적인 방법들을 따르게 되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분열이 생겨난다. 후에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수 8:1).

Arthur W. Pnik 여호수아 강해 p358

● 말라기 1장 13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