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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60] 죄와 패배와 심판(수 7:1-26)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60] 죄와 패배와 심판(수 7:1-26)

En Hakkore 2024. 6. 2. 09:2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원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어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게 하매"(수 7:2).

여호수아는 잠시라도 쉬려 하지 않고, 공격하여 함락시킬 그 다음 성을 살피도록 정탐꾼들을 보내어 그의 앞에 놓인 업무를 계속 수행했다. 그런 엄청난 승리를 얻은 후에도 그는 스스로 가만히 앉아 쉬거나 스스로 잔치를 벌일 권리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철이 뜨거울 때에 때려야 한다는 것을 믿었다.

바람이 불고 있을 때가 돛을 올릴 최고의 적기이므로, 그 시기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영적으로도 그렇다. 하늘로서 부는 바람(요 3:8)의 힘을 받을 때에는 영적인 역사를 위해 과연 호기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열정이 있었으나 신중함으로 절제했다.🌱

그는 맹목적으로 경솔하게 앞으로 전진하지 않았고, 지혜롭게 그 다음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살펴보고자 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충실히 감당할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먼저 앉아", "헤아리지" 않고(눅 14:31), 성급하고도 경솔하게 처신하는 것은 육체의 열병과도 같은 에너지일 뿐이다.

무모함과, 또한 무정함으로 전락하는 신중함의 중간에 해당하는 아주 복된 중용(中庸)이 있는 법이다.

아이는 신성하게 기념할만한 장소였다. 창세기 12:8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이는 이 땅에서 이방인이요 나그네'라는 표시였다)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여호수아 7장의 '아이'와 동일한 곳)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예배자임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멸망할 자들로 지목된 사악한 자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신 것은 그들의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와 부도덕성 때문이었다(레 18:24, 25; 신 18:10-12).

이에 대한 증거가 여호수아 7:2에 언급되는 이름들에서 나타난다.

"벧아웬"은 "허영의 집", 혹은 "불의의 집"이란 뜻이다. 지나가면서 여기서 장소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성경이 극히 사소한 것도 정확히 기술하고 있는 한 가지 예를 접하게 된다.

여호수아는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고 명한다. 성령께서는 창세기 12:8에서 아브라함이 "거기서 벧엘(이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임)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아, 사랑하는이여!
성경 말씀에는 "모순"이란 없다. 다만 전체를 통틀어 지극히 완전한 조화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오직 경건하고 부지런한 학도만이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아이로 보내매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수 7:1-2).

이 절이 함께 연결되어 엄숙한 교훈이 제시된다. 여호수아가 아간의 악행에 대해 몰랐고 따라서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촉발되었음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여호와의 진노를 촉발시킨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요 섭리를 통한 여호와의 미소를 앗아가는 처사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들" 중에 여호와의 진노가 그들을 향해 촉발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경우가 얼마나 드문지! 🥹

여기 이스라엘을 향해 촉발되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 즉,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로채는 것 때문에 - 그들을 향해 여호와의 진노가 촉발된다. 세대주의자들은 이것을 부인하여, 그 일은 과거 "율법의 세대"에 일어난 것이요 "은혜의 세대"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그들의 지독한 무지가, 혹은 정말 두렵다.

하지만 중생하지 못한 그들의 처지가 (거룩하신 주를 모르는 마음이) 드러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행 5장; 계 2:14-16, 20-23)와 우리 중의 성령을 소멸시키는 사례들이 너무도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으니 말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354

● 요한계시록 2장 14-16, 20-23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