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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47]

En Hakkore 2024. 6. 1. 20:02

에녹의 믿음 1(히 11:5,6)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었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5,6)

사도는 이 히브리서 11장에서 구원얻는 믿음의 본질과 중요성과 효력을 히브리 사람들에게 확신시켜 주는 것을 가장 주요한 의도로 삼고 있다. 그 의도를 실행해 나가면서 먼저 믿음의 본질적인 활동들을 묘사했다(1절).

그 다음에 따라오는 모든 묘사들 가운데서는 믿음의 효과들과 열매들과 성취들을 다룬다. 다시 한 번 사도가 성경에 호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복되다. 그는 추상적인 논증이나 단순한 역설을 통해서 그들을 확신시키고 있지 않다. 오히려 성경이 제공하고 있는 많은 실례들과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설득시키고 있다.

아벨의 믿음의 순종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상시케 하였다. 곧 그가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었음을 생각하게 하였다. 이제 사도는 믿음의 또 다른 국면과 귀추를 예증하는 에녹의 경우를 인용한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성령께서 취하시는 "순서"는 역사적인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면 그 점은 명백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서 11절에서는 사라를 말하는데, 사실은 9절에서 먼저 이삭과 야곱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진 것을(30절) 라합의 믿음보다 먼저 말하고 있다(31절). 또한 32절에서는 바락보다 기드온이, 입다보다 삼손이, 사무엘보다 다윗이 먼저 언급된다. 그래서 우리가 좀더 깊은 무엇을 탐구해야 함은 명백하다.

연대적인 순서가 거듭해서 끊어지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구약의 성도들은 언급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음에 틀림없지 않은가? 의심의 여지없이 그러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 이유를 먼 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이 히브리서 11장에서 취하는 순서는 "체험적" 순서이다.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한구절 한구절 살펴나갈 때 그 점은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

4절과 7절에서 세 가지 실례가 제시되어 있는데, 그것은 믿음 생활의 개요를 보여 준다. 아벨이 먼저 언급된 것은 에녹이나 노아보다 먼저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창세기 4장에서 그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 믿음 생활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를 예증하고 증거되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에녹이 그 다음에 언급된 것은, 그가 창세기에서 노아보다 너머 언급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하나님의 은혜가 그 안에서 이룬 것)이 방주를 만든 자를 통해서 모형화된 것보다 반드시 앞서기 때문이다.

이 세 사람은 각각 믿음 생활의 독특한 특징과 국면을 그려 준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의 순서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들을 특징짓는 관점이 제시되었다. 아벨을 통해서는 믿음의 예배, 에녹을 통해서는 믿음의 행실, 노아를 통해서는 믿음의 증거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것을 진술하는 정확하고 도움을 주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숙고해 보면 볼수록 그것의 아름다움과 복됨이 더욱더 잘 깨달아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순서를 뒤바꾸는데, 기름부음받은 자의 눈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차원 낮은 세대에서보다 이 사실이 더 명백히 나타나는 때가 없다. 증거와 일(봉사)이 오늘날 얼마나 많이 강조되는지 모른다.

사랑하는이여, 그럼에도 히브리서 11장은 노아의 경우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노아는 에녹 뒤에 소개된다. 그 이유는 이렇다. 하나님이 동행하지 아니하면 어떠한 증거나 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봉사를 드리는 일보다 앞서야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 점을 너무 많이 망각하고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고백하자마자 그들은 즉각적으로 어떤 형태의 "기독교 활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뛰어드는 일이 보편적인 일이다.

곧 노방전도와 개인적인 사역과 주일학교를 가르치는 일 등,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히 말하고 있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여기서 새로 입교한 자라는 말은 '믿음을 새로 가지게 된 사람'을 가리킨다)(딤전 3:6).

하나님의 말씀의 '순서'를 면밀히 주목하지 못함으로 손해 보거나 놓쳐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이 책에서 그 사실을 자주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무리 강조한다 할지라도 지나치지 않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정해놓은 순서를 떠나는 순간 혼란과 그 혼란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의 수반하는 악이 대번에 나타나게 된다. 우리는 성경에서 일들을 배열하고 있는 순서에 아무리 엄격한 주의를 기울인다 할지라도 지나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에만 그것이 가져다 주는 가장 좋은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고 그것이 보여 주는 하늘의 지혜를 감탄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그러하다.

에녹의 믿음의 행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노아가 증거한 것보다 앞서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노아의 믿음의 증거는 아벨의 믿음의 예배보다 뒤에 와야만 한다. 하나님과 진정으로 동행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의 선입견과 우리 자신의 방식을 제쳐 놓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며, 하나님의 정하심에 복종하며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 그 다음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그런 다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하늘이 가진 불변하는 질서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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