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38]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38]

En Hakkore 2024. 5. 30. 16:18

믿음의 탁월성 4(히 11:1-3)

많은 사람들은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이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의미하는가? 그들의 믿음이 붙잡았노라고 외치는 것들을 통해서 그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

죄가 가장 극악한 것임을 믿는다는 고백은 한다 - 그런데 정말 내가 그 말대로 죄를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가?
오래지 않아 내가 그리스도의 심판 보좌 앞에 설 것을 믿는다 - 내가 그 엄숙한 날에 비추어서 살아가고 있음을 내 행실이 증거하는가?
세상이 공허하고 시시한 것이라고 믿는다 - 그런데 아름답게 색칠한 번쩍거리는 세상의 화려함을 멸시하는가?
하나님께서 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리라 믿는다 - 그런데 나는 내 일에 대해서 두려워하는가?
기도가 은혜 안에서 성장하기 위한 본질적인 방편이라고 믿는다 - 나는 은밀한 골방에서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보내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는다 - 나는 부지런히 내 등불을 점검하여 불을 밝히려고 노력하는가?

믿음은 믿음의 열매들과 행실들과 효력들에 의해서 증거된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들"이다. 여기서 "증거"로 번역된 헬라어 명사는 (개정역에서는 "증험"이라고 하고, 난외주에서는 "시금석"(test)이라 하였다) 증거를 통해서 '확신시키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주 예수께서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요 8:46)고 도전장을 발하실 때 사용하신 말이기도 하다. 그 명사는 다른 곳에서는 디모데후서 3:16에서만 발견된다. "모든 성경은 ...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 "책망"이라는 말은 "확신시킴"(납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진리인 것에 대한 확증과 확실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증거" 라는 말은 증빙을 갖춘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것들의 실상과 확실성에 대하여 확신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믿음"은 먼저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들을 "붙잡는" 영혼의 '손'이다.♥

둘째,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향하여 바라보고 그 약속들을 분명히 우리에게 납득시킬 만큼 보여 주는 영혼의 '눈'이다.♥ 불신자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눈에 보이지 않고 장래에 속한 것들은 모호하고 허구적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깨달을 만한 매체적 기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이른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그 분"을 본다(히 11:27). 아마 우리는 그 점을 이렇게 예증할 수 있을 것이다. 배의 갑판에 두 사람이 서서 먼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다. 한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멀리 있는 기선의 모습을 상세하게 말한다.

앞 사람은 자기의 육안으로만 보았고, 뒷 사람은 망원경을 사용하여 보고 있다! 망원경의 강력한 굴절률을 가진 렌즈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사물을 보게 하는 것처럼, 믿음은 우리의 감각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을 마음으로 실감나게 한다.

믿음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모든 증거의 빛과 능력으로 영혼 앞에 그려 준다. 그래서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내적인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믿음은 몸의 눈으로써는 분변될 수 없는 것들을 마음의 눈이 실감하도록 증거해 준다"(M. Henty).

육에 속한 사람은 감각의 생활을 좋아하며 과학적 증거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믿으려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강조하면, 그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거부감으로 어쩔 줄을 모른다. 그 영원한 것들은 사단의 "불화산"에 의하여 활동하도록 자극받는 불신앙의 대적들이다.

믿음의 방패가 아니고서는 그 대적들을 소멸시킬 수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 마음을 새롭게 하시면 편만한 불신앙의 세력은 깨어진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진리임에 틀림없다"고 논증한다.

믿음은 이해를 어찌나 강하게 확신시키던지, 비할 수 없는 논증의 힘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의 확실성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 그 확신이 너무 강력하여 마음이 그로 인해서 영향을 받고, 의지가 감동받아 그것들을 따라 가게 된다.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잠시" 동안만 존재하는 "죄악의 낙"(히 11:25)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하나님 우편에 있는 영원한 즐거움"을 붙잡았기 때문이다(시 16:11).♡

1절의 내용들을 요약해 보자. 불신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앞에 제시한 것들은, 허구적이고 이를 범하지 않게 보이며 모호하고 쓸데 없는 것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도록 하며,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알게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체를 믿게 한다.

믿음은 보이는 것들의 눈을 닫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에 그 귀를 열어 놓는다. 믿음은 육신적 논증, 육신적 선입관, 육신적 핑게를 극복하고 확신시키는 능력이다. 믿음은 판단을 겸허하게 하고, 마음을 조성시켜 주고, 의지를 움직이고, 삶을 개역시킨다.

믿음은 땅에 있는 것들과 세상의 허무한 것들에서 눈을 떼어 영적이고 신적인 실패들에 사로잡히게 한다. 믿음은 낙담케 하는 것들에 대하여 담력을 가지게 하고, 어려운 난제들을 보고 웃게 하며, 마귀를 거역하며 시험을 이기게 한다.

그것은 믿음이 영혼과 하나님을 하나 되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은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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