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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36]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36]

En Hakkore 2024. 5. 30. 16:17

믿음의 탁월성 2(히 11:1-3)

사도는 이제 자기의 권면을 예증하고 강화시키기 위해서 지나간 역사로부터 대단히 다양한 여러 경우들을 제시한다.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매우 어려운 의무들을 감당하고, 매우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고, 매우 중요한 복락을 얻었던 사람들의  경우를 예시한다.

사도의 권면에 깔린 원리들은 분명히 이러한 것들이다: '뒤로 돌아가는 자는 침륜으로 빠져 들어간다. 영혼의 구원을 얻을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가진 사람뿐이다. 끝까지 견디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사람도 끝까지 선을 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인내하면서 겸손하게 복종할 수 없다.

또한 복음이 약속하는 영광과 영예와 불멸성을 얻을 수 없다. 끝까지 견뎌내는 믿음이 아니고는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없다. 끝까지 견디는 믿음이 그것을 해낸다. 지나간 세대에서 그 믿음이 행한 일을 보면 그 점은 명백하다"(J. Brown).

히브리서 11장을 써내려 가면서 사도가 가진 생각의 순서를 초기의 한 청교도가 유능하고 유익하게 밝혔다. "히브리서 11장 전체를 두 대목으로 나눌 수 있다.
1)믿음에 대한 보편적 '묘사'로 1-4절이 해당된다.
2)그 묘사를 '예증'하고 선언하는 부분으로서 4-40절이 그에 해당된다. 구약에 나타난 옛 가치 있는 사람들의 여러 '실례들'을 상세하게 열거함으로써 그 묘사를 예증하고 선언한다.

믿음에 대한 묘사는 세 구절에서 제시된 믿음의 세 가지 활동들, 또는 효과들로 나누어진다.

첫번째 효과는, 믿음은 아직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들(그러나 바라기만 하는 것들)을 신자에게 존재하고 현존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1절).

두번째 효과는,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인정받게 만든다는 것이다(2절).

세번째 효과는, 믿음이란 감각과 이성으로 볼 때는 도저히 믿어지지 아니하는 일들을 이해하고 믿게 만든다는 것이다"(Wm. Perkins, 1595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이 구절의 처음에 나타나는 "이제"(우리말 개역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 - 역자주)는 "왜냐하면"과 거의 방불한 의미를 가지고 방금 선언된 것을 더 확증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사도는 10장을 끝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확언하였다.

그럼으로서 그는 이제 믿음이 무엇이며 어떤 일을 내는지 보여줄 기회를 잡은 것이다. 믿음이 영혼을 붙잡아 주고 모든 유의 시련 속에서도 견디어 내게 하여 결국은 구원을 얻도록 한다는 사실을, 그 믿음의 본질상 산출한 효과로부터 논증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음에 나타나는 구절들 속에서 인용되는 여러 가지의 실례를 하나하나 들어가면서 예증하고 실증하는 것임을 명심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가 묘사하고 예증하는 "믿음"은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믿음이다.

"1절에는 묘사 자체만 드러나 있다. 곧 그 묘사되는 요점은 믿음이다. 믿음에 대한 묘사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이다. 그 묘사는 예술의 원리를 따르면 바른 것이다: 습관들(또는 은혜들)을 묘사할 때는 그것들의 외향적 활동에 따라서 묘사된다.

그와 같이 여기서 믿음도 그것의 초보적이고 외향적 행동으로 말미암아 묘사되고 있다. 그 행동들은 그 행동들이 추구하는 독특한 대상을 가리켜 준다. 믿음의 행동들은 두 가지이다. 곧 실상과 증거이다. 내가 그것들을 '행동들' 이라 칭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왜냐하면 사도가 바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번역자는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그 본문의 범주를 모호하게 하기보다는 그 본문을 의역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해석한다 - 믿음은 우리의 소망을 구체화시키거나, 또는 우리의 소망의 실체를 부여한다. 또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증명한다.

믿음의 행동들과 복음의 효과들 사이에는 대단히 큰 차이가 난다. 믿음의 효과들은 이 히브리 11장 전체에서 다루어진다. 믿음의 외양적 행동들은 이 구절에서만 보인다. 이 행동들은 그 행동들이 목표하는 대상과 부합되어 있다. 믿는 것들이 아직 장래에 속하기 때문에, 믿음은 그 믿는 것들의 실상과 존재를 제시한다.

그것들은 육신의 눈과 육신적 이성으로부터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역시 믿을 만한 가치를 확실히 갖도록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행동들 중 하나는 '이해'에 속하고 또 다른 것은 '의지'에 속하게 된다"(T. Manton, 1670).

1절의 내용들은 믿음에 대한 하나의 규범적 정의라기보다는 믿음이 어떻게 작용하여 무엇을 산출하는지에 대한 간결한 묘사라 할 수 있다. 육신적이든 영적이든 믿음은 하나의 증언은 믿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은 하나님의 증언을 믿는 것이다.

이 증언의 주제들이 단순히 미래에 속한 것으로 생각되든지, 아니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장래에 속한 것으로 생각되든지간에 믿음이 그 증언의 주제들에 대하여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또한 그 믿음이 영혼 안에서 영혼에 대해 산출되는 효과들에 있어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성령이 여기서 설명하고 계시다.

첫째,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이라고 말씀하신다. "실상" 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여러 가지로 버역되었다. 흠정역의 난외주에서는 "근거 또는 신용"(ground or confidence)이라고 하였고, 개정역(R. V.)은 본문에서 "보증"(assurance)이라고 하였으며, 난외주에서는 "실체를 주다"라고 번역한다.

헬라어는 "히포스 타시스" 인데, 그 말은 고린도후서 9:4과 11:17에서는 "확신한"(우리말 개혁성경에는 "믿던"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 본 강해서 저자의 벡스터의 원어대조역 성경에서와 같이 "이 자랑의 믿던 것"이라 해야 한다고 말한다 - 역자주),

히브리서 1:3에서는 "인격"("실상"이나 "본질적 존재"로 번역되어야 한다)(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이는'이라고 번역됨 - 역자주) 3:14에서는 "확실한 것"으로 번역된다. 본 강해서 저자는 개인적으로 그 말이 이중적인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 관점에서 그것을 강해해 나가려 한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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