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35]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35]

En Hakkore 2024. 5. 30. 16:16

출애굽기를 끝내기 전, 기도하면서 히브리서를 시작하기 전, 전체의 분량이 너무 많고, 제사와 예배의 부분이 중복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11장부터 시작할려고 했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르기 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생각하며 더 깊히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히 10:19-23)

이제 의도한 바처럼 믿음장을 시작해 봅니다. 귀한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탁월성 1(히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1-3).

우리가 11장의 내용으로 들어가지 전에 이미 지나온 부분을 간단하게 재 검토해 보기로 하자. 1장과 2장은 그 성격상 서론적인 부분이다. 그 속에는 신인 중보자의 놀라운 "인격" 이 드러난다.♥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우월하고, 천사들을 훨씬 능가하는 인격으로 묘사되어 있다.

3:1에서 시작된 제일 중요한 대목은 4:15까지 이어져, 그리스도의 "사명"을 다룬다.♥ 그리스도가 받은 사명은 모세나 여호수아가 받은 사명을 훨씬 능가한다. 왜냐하면 모세나 여호수아 어느 사람도 백성들을 하나님의 참된 안식으로 인도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 대목이 끝난 뒤 4:16에서 바로 실제적인 적용을 시도한다.

두번째로 주요한 대목은 5:1에서 시작되어 10:18까지 줄곧 나아가면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을 다룬다.♥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그 존영과 효력과 영구성에 있어서 아론의 제사 직분을 능가함을 밝힌다. 그 대목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은 10:19에서 12:29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13장은 히브리서의 결론을 형성한다.

이 서신의 보편적인 성질은 글의 종류에서 볼때 권면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장려하는 것이다. 이 서신의 목적과 의도에서 그러하다. 여러 시험들과 핍박들에 대하여 부단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복음의 소망을 버리지 말고 지켜나가라고 권면하고 있다.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앙고백에 있어서 두 가지 갈등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유대교의 상태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유대교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이다. 뒤로 물러가 자기들의 신앙을 버리고 싶은 유혹이 유대교의 상태와 모세의 여러 예배 규례들로부터 촉구를 받았다.

그 유대교회가 하나님에 의해서 제정되었으며, 그 유대교의 예배와 그 유대교의 예배의식을 확증한 언약의 엄숙성과 그 제사 직분의 영광과 제사장들과 다른 신적 규례들(롬 9:4)과 그 제사들의 하나님께 열납되는 효능 등이 끊임없이 그들에게 생각되고 강하게 밀려와서 복음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또한 두 상태가 서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나서 그 시련은 매우 대단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서 히브리서의 모든 "교리적" 부분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힘입어 그 부분을 이미 강해하였다.

이 히브리서 기자는 그 부분 속에서 구약 시대의 모든 신적 규제들이 가진 성질과 용도와 목적과 의미를 선언하였다. 또한 그것들이 외양적으로 드러내었던 모든 영광과 효능도 인정하였다. 그러면서 이 기자는 성경 자체로부터 복음 교회의 상태가 그 대제사장과 제사와 언약과 예배와 여러 특권들과 비할 수 없이 나음을 선언한다.

아니, 구약 교회의 상태의 모든 탁월함과 영광을 나타내는 표증에 불과하였음을 선언한다. 만일 그리스도와 복음의 더 큰 영광이 아니라면 그러한 것들은 아무런 소용도 없고, 존속되는 것이 오히려 파멸적이거나 약한 것이었으리라.

"사도는 그들의 마음을 진리에 고정시켜 놓고 그들이 계속해서 당하는 시험들을 이기도록 무장시켜 놓은 다음에, 이제 두번째 방편으로 나아간다. 그것을 통해서 사실 사도가 그들에게 권면한바, 복음을 믿는 믿음의 견고성과 부단성이 이미 공략을 당하고 있었고, 더 큰 세력과 맹렬함으로 공략을 받을 가능성이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 앞에 부닥쳐 오는 반대와, 그들이 참아냈고 아직도 견뎌내야 하는 모든 유의 핍박들로부터 야기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신앙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그들의 믿음과 거룩한 예배를 지키는 것이 복음 안에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교회 자체의 상태로부터 다른 '시험'을 받아야 했듯이 이러한 시험을 유대교의 완고한 '성원들' 때문에 겪어야 했다. 사도는 그 점에 대해서 12장 마지막에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도는 그들이 믿음을 지키고 그들에게 부닥쳐 올 수 있는 모든 악을 대항하여 자기들의 신앙고백을 부단히 지키기 위한 그들 나름의 오직 유일한 방편과 방식을 선언한다.

곧 그것은 믿음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들은 진리의 '교리'를 통해서 그들이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에서 건짐받는다. 또한 '믿음'을 행사함으로써 그들을 대적하는 '반대 주장'으로부터 건짐받을 수 있다"(J. Owen).

10:19에서 시작된 대목의 특별한 성격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대목은 우리의 책임 문제를 다루고 있다. 10:22,23,24의 "... ...하자"는 어투로부터 그 점이 명백해진다. 10:32-36에서는 하나님의 의의 미쁘심을 믿는 참된 믿음이 아니고서는 마음을 붙잡아 주지 못하고, 시련과 고난의 지루한 기간 동안 집요하게 참아내도록 부추기지 못한다.

그래서 사도는 10:38에서 하박국의 두드러진 말씀을 인용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문장은 사실 히브리서 11장의 설교 본문이라 할 수 있다. 11장의 중추적인 목적은, 이전 시대에 하나님의 약속으로 성취받기 전에 믿음으로 견디었던 사람들의 "인내"를 증거하려는 것이다. 특히 13절과 39절을 주목해 보라.

"'이 말씀'(1절)을 히브리서 11장의 첫 말씀으로 삼는 자는 누구든지 지혜롭지 못하게 문맥을 끊어버리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사도는 그가 이미 말했던 것을 증거할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곧 인내할 필요가 있음을 증거하려고 한다.

그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던 하박국의 증언을 인용했다. 이제는 무엇을 증거해야 할 것인지를 보여 준다. - 믿음이란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는 반드시 인내를 수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순서는 이러하다.

우리가 인내하지 아니하면 구원의 목표 지점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지자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가 아직은 누리지 못하는 멀리 있는 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인내를 함축한다. 그러므로 논증에 있어서 최소한의 전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이라는 것이다"(J. Calvin).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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