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3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37]

En Hakkore 2024. 5. 30. 16:17

믿음의 탁월성 3(히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확실한 것)이요".

이 장에서(그리고 신약의 보편적인 흐름에서) "믿음"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선언하신 어떤 것에 대한 단순한 승인보다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확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음을 가진 자에게 그러한 것들이 존재함을 확신시켜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미쁘심으로 말미암아 언젠가 그것들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시켜 준다.

그래서 그것은 기대의 터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소망이 의지하는 '객관적' 기초이다. 그러나 믿음은 '주관적' 기초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나에게 내 소망의 확실성을 확증하기 때문이다. 믿음과 확신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약속하신 이의 능력과 신실함을 의뢰하는 것만큼, 약속되고 내가 기다리는 것을 받을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믿고' 알았삽나이다(확신하였삽나이다)"(요 6:69).

방금 말한 것을 통해서 독자는 아마 흠정역의 본문에서 발견되는 "실체"(substance)라는 특별한 말의 강도를 더 잘 깨달았을 것이다. 그 말은 두 라틴어에서 온 말이다. 곧 substance 라는 라틴어인데, 그것은 "아래에 서는 것"이란 의미를 가진다.

믿음은 내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는 동안 견고한 기틀을 마련해 준다. 믿음은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중간 기간 동안 내 마음을 확실히 지탱하여 준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의뢰한다.

그러하니 폭풍이 아무리 휘몰아치고 기다리는 기간이 아무리 지연된다 할지라도, 마음은 든든히 서서 요동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히 11:13).

참된 믿음은 장래의 일들을 요동치 않고 확실하게 기대하게 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개정역(R. V.)의 난외주가 "실체화하다"라고 한 것과 같다. 믿음은 하나님의 확실한 증언을 신뢰하고, 그의 약속을 의뢰하고, 그 약속들이 성취될 것을 기대하면서, '장래' 기간 동안에 이루어질 것으로 바라는 대상이 영혼 안에서 '현존하는' 실체와 능력으로 존재케 한다. 마치 이미 소유된 것과 같이 말이다.

왜냐하면 믿는 자는 제시된 안전보장으로 만족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가 하신 약속을 결코 어기지 않을 것이라는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행동'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다 이루실 것이라는 '견고한 확신과 기대'이다.

이 확신이 너무 강해서 일종의 소유감과 그것들의 현실적 성취감을 영원히 가지게 한다. 또한 그것들의 첫 열매와 첫 맛을 느끼게 함으로써 영혼 속에서 그것들을 실체화시킨다. 그래서 믿음을 행사하는 신자들은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넘치게 된다"(M. Henry).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지게 되는 확신에 넘친 기대감으로 그리스도인이 소망하는 대상들이 현재 실체로 존재하는 것들처럼 마음에 느끼게 해준다. 믿음은 장차 올 것을 냉담한 생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장차 올것들에게 생명과 실상을 부여한다.

믿음은 마치 공상이 육신적인 차원에서 우리에게 행하는 바와 같은 일을 영적인 차원에서 해준다. 아직 장래에 속한 것들은 마음의 눈에 '그리게' 하는 이해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믿음은 그보다 더하다. 믿음은 어떤 상상적인 모습을 그려 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실체를 보여 준다.

믿음은 믿는 주체와 그 주체가 바라보는 대상을 하나로 묶는 은혜이다.♥ 하늘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믿음은 먼 것들을 가깝게 하기 때문이다(롬 10:6,7). 그러나 믿음은 영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하나로 묶는 끈이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받는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는 "우리의 것이" 되신다(요 1:12).

그러므로 믿음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장래의 복락들에 대해 주님을 찬양하게끔 하되, 마치 그가 이미 그것들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찬미하게 한다. 그러나 믿음이 '어떻게' 장래에 속한 것들을 하나의 현존하는 실체로 마음에 그려 주는가?

첫째, 약속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약속들 속에 쌓여져 있는 것을 그려냄으로 말미암는다. 그래서 그것들을  "위로하는 품"이라 불렀다(사 66:11).

둘째, 약속들이 영혼의 양식이 되게 함으로써이다(렘 15:16). 그 약속들이 영혼에 대하여 진실로 현실적인 것이 아니면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없다.

셋째, 그 약속들이 의도하는 모든 목적에 대하여 그것들이 가진 능력을 체험하게 함으로써이다.  그것이 영혼 안에서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은 신적 진리를 활용하고 이해할 때이다.

넷째, 그 약속들의 첫 열매들을 우리에게 전달함으로써이다. 믿음은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에 대하여 살아 있는 실체를 제시한다. 주어진 인상이 어찌나 진실하고 강하던지 마음이 같은 형상으로 화하게 된다(고후 3:18).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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