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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30]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30]

En Hakkore 2024. 5. 29. 14:56

영원을 구원함에 이르는 말씀 2(히 10:35 -39)

시련당하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사도는 대번에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참된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약속된 상급에 시선을 줄 수도 있고 주어야 함을 매우 명백히 알게 된다.

이 구절은 어떠하든지 따로 떼어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 12)

"산상설교"에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에게 속한 것이나 그들에 대하여 말한 것이 아니고 '유대인' 이나 '천년왕국'에 속한 자들에게 말한 것이라고 선언하는 자들의 오류를 대번에 드러내는 말이 있다. 그 말은 "하늘에서" 라는 말이다.

그 말을 유심히 주목하도록 하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급을 생각함으로 마음이 아무리 사로잡힌다 할지라도 지나치지 않다. "상급"의 문제를 지금 상세하게 다루기에는 너무 큰 문제이다. 그러나 오늘날 오류를 볼 때 그 점에 대하여 무언가 말할 필요가 있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은혜"나 "상급"이 전달하는 개념을 서로 조화될 수 없이 상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성령께서 어휘를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발견하기 위해서 성경을 탐사해 보지 않고, 얼른 인간이 만든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사에 있어서 "상"은 보통(언제나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공로"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성경에 쓰여지는 상이라는 말의 보편적인 용도는 그렇지 않다. 그 말이 처음 나타나는 창세기 15:1을 보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신다. 그 족장 아브라함이 그러한 상급을 "받을 만한" 어떤 일을 했다는 것은 얼마나 전적으로 불가능한가!

성경에서 "상급" 이라는 어휘 속에 어떤 공로되는 일에 대한 보상의 개념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깨닫기만 하면 그 상급의 문제에 현대의 '세대주의자들'이 뿌려놓은 연막이 깨끗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칼빈(J. Calvin)은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바르게 지적한다. "사도는 '상'을 언급하면서도 은혜로운 구원 약속으로부터 어느 것도 깎아내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믿음 있는 자들은 자기들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음을 알고 하나님의 긍휼만을 의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상'이 '은혜로운' 의의 전가와 서로 모순되지 않은지에 대하여 다른 곳에서 자주 진술되었다. 다비(J. N. Darby)나 스코휠드 박사(Dr. Scofield)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전보다 '더 많은 빛을' 발휘하게 되었다고 상상하는 자들이, 선입견 없이 종교개혁자들의 이야기와 퓨리탄들의 글을 읽어 보기만 하면 금방 자기들의 생각을 고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국면에서 앞으로 진보하지 않고 퇴보했다. 사람들 안에 있는 '빛' 이라는 것이 역시 '어두움'에 불과하고, 그 어두움이 어찌나 크던지(마 6:23) 사람들의 눈이 참된 빛을 보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왜냐하면" 이라는 처음 나오는 말은, 사도가 여기서 방금 강조했던 권면을 확증하고 있음을 지시한다. "이 담대함을 끝까지 견고하게 잡음으로써만 그 상급을 차지할 수 있다 -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을 단단히 붙잡고 끝까지 참음으로만 그 상을 얻게 된다"(J. Brown).

우리가 끝까지 견뎌 구원에 이르려 한다면, 인내와 순종의 길에 계속 머물며 충성과 고난을 견뎌내는 것은 불가불 필요한 일이다. 이 가르침을 '율법적이고 방종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 약속을 기업으로 얻는 것은", 믿음과 인내 '때문에' 가 아니라 '믿음과 인내로 말미암는다'(히 6:12).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와 하나님의 구원의 절대적 은혜를 그러한 차원에서 선포했던 청교도인 죤 오웬(J. Owen)의 글에 친숙한 사람은 누구든지 그를 율법주의자라든지 피조물의 공력을 계산에 넣은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히브리서 10:35, 36의 주석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러므로, 여기에서 언급된 '상받는 것'은 하늘의 영광이요,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극복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장래의 영광을 기원적인 근원에서 따지자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적인 은혜의 열매이다.

우리가 나라를 받는 것은 그 분의 기뻐하심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그 장차 받을 영광을 가능케 한 원인의 차원에서 따지자면 그 영광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산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셨다. 두 사실을 다 종합하여 보아도 그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사이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생이기 때문이다'(어떠한 차원에서든지 우리 자신에게 공력이 돌려질 수 없고, 우리가 당한 일과 약속된 일 사이의 공정한 정비례 법칙에 의해서 주어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차 나타날 영광은 상급과 보상의 이름으로 고난받는 자들에게 부단히 약속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함의 차원에서 비추어 볼 때, 자기 백성들을 불러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그 일을 위하여 여러 번 손해를 당하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라 하시면서도, 그 백성들이 당했던 것보다 무한히 더 나을 것을 지시하시지도 주시지도 않는 것은 합당치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담대함은 큰 상을 '얻는다'. 곧 이 담대함은 장차 영광을 받을 권리와 자격을 준다는 것이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비준이 들어 있다. 누구든지 그 담대함을 버리지 않고 계속 견지하는 사람은 결코 더 이상 문제아가 되지 않을 것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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