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2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27]

En Hakkore 2024. 5. 29. 14:55

환난의 길 5(히 10:32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사도는 여기서 히브리 사람들이 어려울 때 자기에게 보여 준 자비에 대하여 크게 감사하고 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했던 역사적인 때를 가리킬 수도 있다(행 21:33). 그때 바울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그들이 바울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또 편지나 선물을 보냄으로써 보여졌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받는 종들 중 어느 사람에게든지 실제적인 방식으로 긍휼을 표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워진 의무이다. 또한 도울 힘이 있어, 그러한 사람들을 돕고 생계를 위해 보탬을 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마땅한 의무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자기들에게 베풀어 준 그 친절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도 마땅한 의무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 형제들에게 베풀어 주었던 사랑의 수고를 다른 사람이 다 알도록 증거한 것이다(마 25:34-40).

"너희가 갇힌 자(나)를 동정하고".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의 기자라는 많은 증거들 가운데 하나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이 공상한 대로 이 서신을 누가나 바나바나 클레멘트 같은 사람이 썼다는 암시를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그들 중 어떤 사람이 유대에서 옥에 갇히는 고통을 당했다는 교회사적 기록도 없음을 믿는다.

그러나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은 다른 모든 자들보다 널리 알려졌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특별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갇힌 자 된 바울"(몬 1:1)이라고 칭했던 것이고 "쇠사슬에 매인 사신" 된 것을 특별한 영예로 자랑했다(엡 6:20).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은혜의 보좌 앞에서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바랬다(골 4:3). 그의 "매임"이 교회의 기도 제목처럼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친밀하게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 히브리서 10:34의 언급은 분명히 이 서신의 기자가 누구인가를 밝혀 준다.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이 말씀은 히브리 사람들이 시련을 당할 때 어떠한 자세를 취했는지를 더 잘 알려 준다. 그들은 환난의 큰 싸움을 인내하면서 "견뎌"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복있게 생각하였었다.

그것은 육체의 연약을 극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은혜의 복된 승리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사람을 강건케 하사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신다"(골 1:11).

보통, 애써 일하여 얻은 재산들을 잔인하게 탈취당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낙심케 하는 것이 없다. 더구나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재산들을 탈취당하게 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럴 때에는 애통과 슬픔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마음이 모든 세상의 위안과 편의를 가볍게 보게 될 때는 참으로 복되다. 왜냐하면 그러한 세상적인 것들에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그렇게 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이 소절은 앞 소절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주는 열쇠를 제공한다. 또 그들의 기쁨의 구원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난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고 여긴다(롬 8:18).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마음의 심지가 위엣 것을 진정으로 향하고 있으면(골 3:2) 세상의 어떤 하찮은 것을 잃어도 좀채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물질적인 산업을 이유없이 박탕당할 때 애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초자연적인"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부요는 인간적이거나 사단적인 약탈자에게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모든 세상적인 산업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령의 위안과, 영원한 영광의 소망을 탈취해 갈 수는 없다.

돈이나 생명을 요구하면서 매복하여 있다가 덤벼드는 강도를 맞는 사람이 "돈,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내 생명이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다" 고 말했다. 세상에 속한 불쌍한 사람들은 사업이 부진하고 악화될 기미가 보이고, 은행이 파산할 때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벧전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즐거워하고 다른 모든 것을 헛됨과 심령의 괴로움거리로 여기는 것은 믿음을 행사하고 마음이 하늘에거 받을 몫에 대하여 생각함으로 충만해져 있을 때만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러한 고난을 받을 때 그처럼 자만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들은 자신들에게 하늘에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첫째, 하늘에 있는 성도의 행복이 '본체'요 실로 무겁고 가치 있는 것임을 관찰하라 -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둘째,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얻거나 잃어버릴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나은 산업이다.

셋째, 그것은 영구한 산업이다. 그것은 시간이 경과해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토록 함께 존재한다. 그들은 그 산업을 없애버릴 수 없다 그들의 원수들도 땅에 있는 그들의 산업을 빼앗는 것처럼 빼앗을 수 없다.

넷째, 이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 잃고 고통을 당하는 모든 것에 대한 풍부한 보상이 될 것이다. 하늘에서 그들은 더 나은 생명과, 더 나은 지위와, 더 나은 자유와,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마음과, 더 나은 일과, 모든 더 나은 것을 받게 될 것이다"(M. Henry).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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