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28]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28]

En Hakkore 2024. 5. 29. 14:55

환난의 길 6(히 10:32 -34)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우리는 이 소절의 처음 세 마디(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앎이라'로 번역된 부분 - 역자주)를 유심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 히브리 성도들은 자기들의 하늘 몫에 대한 확고한 마음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안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너희 스스로 앎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리의 한 측면, 곧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국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늘날 그러한 확신이 드문 실정이다. 오히려 그러한 진리의 국면이 크게 조롱받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확신의 오직 유일한 근거가 성경의 단순한 문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확신의 근거가 기록된 말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오직 유일한 근거는 아니다. 마치 결혼서약만이, 자기를 사랑하고 위해 주고 함께 살 그 남자가 자기의 남편이라는 점에 대해 여자가 가진 오직 유일한 증거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얼굴 빛을 즐거워 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 점을 발견하기 위해서 요한 일서를 통독해 보면 알게 된다.

"너희 자신이 앎이라".

주를 알기 위해 계속 추구해 나가는 자는(호 6:3), 밖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요 후사임을 자기 안에서 증거하시는 성령의 증거도 갖고 있다(롬 8:16, 17). 그는 중생하고 체험적인 성화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성령의 첫 열매"를 받았다(롬 8:23).

결과적으로 그는 지금 새로운 소원과 새로운 갈등과 새로운 직분과 새로운 슬픔을 가지고 있다. 믿음은 그의 마음을 정결케 한다(행 15:9). 그는 양자의 영을 받아 "아버지"라 부른다. 그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발견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는 하늘에 속하기 위하여 다시 태어났음을 안다.♥

자기들 마음 속에서 역사하는 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조롱하고 모독한다. 그러나 자기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성경적으로 확신하는 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비웃지 못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만을 당해왔고 지금도 기만을 당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중생치 못한 사람의 마음이 "만물보다 부패하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마귀가 사람들 속에 일어나는 행복한 느낌을 방편으로 해서 수천의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도, 참된 그리스도인 모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알 의무와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다르게 하거나 바꿀 수는 없다.

그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순종하고 있다면, 선한 양심의 증거를 즐거워할 이유를 가질 것이다(고후 1:12). 그러나 만일 그가 육체의 정욕에 복종하고 경건치 않은 세상과 교제하며, 뒤로 물러간 상태에 있다면, 그의 구원의 기쁨은 상실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하늘을 향해 순례길을 가고 있다는 내적인 증거를 언제나 깨끗이 유지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것이다.

"사도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 사도가 바라는 목적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될 것인가를 아는 것은 쉽다. 사도는 그들을 배도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경계시키고 복음 신앙과 믿는 도리 안에서 세워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어째서 지금도 기독교를 위해서 고난받기를 싫어하는가? 너희는 처음부터 고난을 당하지 않았는가? 너희가 처음 그리스도인들이 될 때 고난당할 각오를 하지 않았는가? 기독교란 언제나 고난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같으신 분이 아닌가? 기독교의 믿음과 소망이 고난당하고 있는 너희를 붙잡아 주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 믿음과 소망이 고난은 잠시 당하는 가벼운 환난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지 않는가?

그 믿음과 소망이 그때처럼 너희를 받쳐줄 수 없는가? 하늘에 있는 산업이 참된 것이 아님이 드러났는가, 아니면 영원토록 없어지지 아니할 차원에서 낮아졌는가?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그리스도인에게 그 하늘에 보화가 쌓여져 있다는 것에 대한 훌륭한 증거를 가지는 면에서 그때와 지금이 다른가?

너희는 너희가 쌓아온 그러한 희생들의 유익을 상실하고 너희가 참아온 고난의 유익을 모두 잃어버릴 참인가? 너희가 만일 끝까지 참지 못하면 그러한 것들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사도의 말을 들으면 그러한 생각들을 자랑스럽게 하게 된다. 그러한 생각들은 전부 그들로 하여금 '움직이지 않고 믿는 도리의 소망을 견고히 붙잡도록 권유하기에 족하다"(J. Brown).♥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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