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23]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23]

En Hakkore 2024. 5. 29. 14:52

환난의 길 1(히 10:32 -34)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32-3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이 세상을 지날 때 부드러운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도록 정해 놓으셨다(행 14:22).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땅에 사는 이상 그렇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 저주를 불러온 것은 다름 아닌 "죄"이다. 우리들 각자의 안과 밖에 아직도 죄의 세계가 있는데, 죄의 쓴 열매를 맛보게 되는 일이 어째서 이상한 일이겠는가! 만일 그 정반대의 경우가 있다면, 그 결과 어떤 것을 맞게 되겠는가?

이 세상의 삶이 슬픔과 고통과 이별의 아픔에서 벗어나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현재 우리가 받은 몫으로 만족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기가 너희의 쉴 곳이 아니니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라"는 사실을 거듭 상기하도록 하셨다(미 2:10).

우리 안에서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이것이 더 좋다"는 소원을 가지게 하려면 시련과 환난이 필요하다(빌 1:23).♥

"환난" 이란 말은 라틴어의 "트리불룸"(tribulum) 에서 파생된 말인데 그것은 곡식의 껍데기를 까기 위해서 로마 사람들이 사용하던 도리끼였다.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들 속에도 "껍데기"가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가! 그런 사람의 영적 행사에도 "육체"가 얼마나 많이 섞여 엉겨 있는가!

그런 사람의 힘있는 열심과 활동에도 순전히 "육신적"인 것이 얼마나 많이 섞여 있는가! 하나님께서 영혼 가운데에서 은혜의 역사를 깊게 하시기까지는 우리 자신의 총명을 의지하는 것이나 육신적 지혜를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 복된 사역을 하시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가장 주도적인 도구들 가운데 하나는 "트리불룸" 또는 도리끼이다. 하나님께서는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하시고"(렘 15:19). 정금에서 찌끼를 제거하시기 위하여 지독한 낙담과 여러 가지의 훼방과 내면적 갈등과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땅에 속한 것들로부터 빼내신다. 또한 그 자녀들로 하여금 생명수 샘을 목마르게 찾도록 하기 위하여 피조물에 속한 만족의 물줄기를 말려 버리신다.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롬 5:3). 인내는 수동적인 국면과 능동적인 국면 모두를 다 가지고 있는 은혜이다. 인내는 수동적인 국면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의 선하심에 온유하게 복종하며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마시지 않겠느냐"(요 18:11)고 말하는 것이다.

능동적인 국면에서 인내는 부단하게 의무를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괴롭게 하실 때 염두에 두시는 큰 목적들 가운데 하나이다. 곧 그들 안에서 "온유하고 잠잠한 심령을" 일으키려 하신다.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룬다". 책을 통해서 진리에 대한 신학적 지식을 얻는 것과, 진정하고 내면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 지식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시련받고 시험받아 단련된 영혼은 하나님의 섭리의 처사에 온유하게 복종한다. 그러면서 그는 체험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롬 12:2).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소망은 계속해서 은혜를 견지하며 최종적인 영광을 확고히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의 고난이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위해 하나님이 지정하신 방편 가운데 하나요, 이 세상에서 우리로 하여금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방편이다. 내세에 하늘나라에 가기에 합당한 자로 만드는 방편이니, 고난을 자랑하도록 하자.♥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더 높여 보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3). 아, 성도는 바로 "그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정하심받은 사람이다(롬 8:29).

첫째, 고난에서 그러하고 그 다음에 영광에서 그러하다. 환난과 고통을 당하며 신음하는 하나님의 자녀마다 질고의 사람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실 때 당한 고통을 상기하도록 하자! 상전이 마신 잔을 종이 마시는 일이 합당치 않은가?

오,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영예 가운데 가장 높은 영예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잠시 고통을 당하도록 하는 때이다. 사랑하는 사도 바울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벧전 4:14).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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