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22]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22]

En Hakkore 2024. 5. 29. 14:52

사도들의 운명 5(히 10:28 -31)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이 구절에서 배도자들에 대해 떨어질 심판의 확실한 절대성과 그 심판의 무서운 엄격성을 더 확증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사도가 말과 글 모두를 통해서 사역할 때 붙잡았던 가장 중요한 진리에 대한 한 본을 대한다.

28, 29절에서 영적 논증을 보여 주면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명백하고 논리적인 추출을 해나가는 모습을 그려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정적이고 논박할 수 없는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의 논리에 의존하지 않고 성경으로부터 인용하여 그 요점을 확증했다.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은 같은 원리를 따라 행사하며, 모든 진행하는 일들을 위하여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분명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여기서는 하나님이 스스로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한 그 신적 성품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우리가 관계하는 그 분이 바로 어떠한 분인지를 자주 온전히 숙고하는 것보다 더 합당한 일이 없다. 우리가 가진 신적 성품에 대한 개념은 우리의 마음을 통제하고 우리의 행실을 규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곳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기 위하여" 기도하는 사도의 모습을 발견한다(골 1:10). 영혼이 자주 하나님의 속성들을 숙고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생각하고, 그의 흠 없는 거룩과 그의 흠잡을 데 없는 순결성과 정확한 공의와 절대적인 미쁘심과 무서운 엄격성을 숙고하는 것은 참으로 유익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우리에게 "영혼과 몸을 함께 지옥에 던져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28).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고에 더욱 주목하게 될 것이고,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확언적으로 묘사하는 성경 말씀에 하나님의 거룩에 위배되는 것이 전혀 없음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죄가 '무한한' 벌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죄의 진정한 성질을 하나님의 외경스러운 거룩의 빛에 비추어 보는 일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라".

신명기 32:35을 가리켜 말한다. 물론 사도가 여기서 그 본문을 글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지만, 모세가 그 신명기 32장에서 하나님께서 온 땅의 재판장으로 서신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자기의 의로운 법을 강화시키고, 그 율법의 정당한 징벌을 악하고 회개치 아니하는 죄인들에게 부과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한동안 오래 참으시는 적이 자주 있기는 하지만 - 왜냐하면 그는 "멸망하기로 예비된 진노의 그릇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다"(롬 9:2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범법자들에게 그 범법의 마땅한 삯을 온전히 지불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이전 사람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셨다. 그러나 끝내 홍수로 그들을 멸하시고 말았다.

소돔 사람들에 대하여 그의 참으신 인내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정한 때가 되니 그는 불을 내려 그들을 살라버리고 말았다. 기이한 오래 참으심으로 세상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악함을 관용하신다. 그러나 그를 그처럼 뻔뻔스럽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수하실 날이 재빨리 다가오고 있다.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성경을 어떻게 '적용'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안내자의 역할로 아주 중요한 본이 여기에 주어져 있다. 신명기 32:36에 기록된 말씀을 언급하고 있지만, 거기 신명기 32:36에는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돌보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그렇게 묘사되어 있다.

반면에 여기서는 그 백성들의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원수 갚음을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의 인용이 서로 어긋나 있는 것을 보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각 성경구절마다 보편적인 차원에서 적용된다.

그리고 각 성경마다 처음 그 말씀을 받았던 사람들에게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려 하시면 그는 틀림없이 배도자들을 심판할 것이다. 과거에 그렇게 하셨다(고전 10:5 참조). 미래에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살후 1:7, 8).

이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함을 통해서 확증된 원리는, 모든 성경은 같은 성질에 속한 모든 경우에 동등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원수들에 대해 말한 것은, 자기 백성들이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배척한다면, 그 백성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우리가 앞에서 생각한 모든 것으로부터 나오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이 "무서운" 이란 말은 죄를 지으며 유회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떨게 하기에 마땅한 말이다. 벨사살 손이 나타나 벽에 글을 쓰는 것을 볼 때 느꼈던 그 무서움처럼 말이다(단 5:5-12).

"손에 빠져 들어가다"는 말은 하나의 비유로서, 원수에게 사로잡힐 때 그 사로잡힌 사람의 전적인 절망을 지시하는 말이다. 배도자를 손아귀에 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죽을 인생은 아무리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할지라도 죽을 너머에까지 그 복수심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은 그처럼 좁은 한계에 국한되어지는 것이 아니다"(J. Calvin).

아니,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태울 것이다. 아무리 죄인들이 간청한다 할지라도 그 진노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잠 1:28; 겔 8:18).

회개하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또한 그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다. 그러나 회개치 않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뽐낸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욕받은 긍휼도 그들에 대하여 복수할 것을 큰 소리로 외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더 큰 소망"의 확상들에 미혹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큰 소망"이란 것이 사단의 또 하나의 거짓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오, "주의 두려우심"(고후 5:11)은 하나님의 성도로 하여금 은혜의 날이 끝나기 전에 얼마나 사람들을 경계시키고 설득시키고 분발시키는가!

또한 우리 각자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행하며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를 아끼지 않도록 하는가! 우리가 영원히 "실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경적 확신을 가지는 것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할 때만이다(벧후 1:5-10).♥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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