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7]

En Hakkore 2024. 5. 29. 14:49

배도 5(히 10:25 -27)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는" 이라는 말씀은 이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다. 이 본문에 빛을 던져 주는 유사한 구절이 사무엘상 3:14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구약시대의 극악함과 높이 든 손으로 지은 배역하는 범죄 때문에, 그 죄들을 속할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했던 어떤 죄들이 있었다. 그러한 죄들에 대하여 "긍휼 없이 죽게" 하였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를 떠나 배도한 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위한 어떤 강구책이나, 그들의 죄를 위한 속죄의 방편이 없다. 그들은 자원하여 최종적으로 복음을 거부하였고, 그리스도의 제사 속에 있는 모든 영광을 다 포기했다. 이 구절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의 성도들의 영원한 구원의 안전성에 대한 복된 진리와 상충되는 것이 이 구절 속에 하나도 없음을 강조적으로 말해야겠다.

사도는 여기서 히브리인들이 배도했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그들이 배도할 것이라고 확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신실하게 만일 그들이 그러한 배도를 할 경우 따라올 확실하고 무섭고 영원한 귀추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짐짓 죄를 범한즉"(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짐짓 죄를 범한다면).

사도가 여기서 그것을 가정법으로 표현한 것은 그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죄를 짓지 못하도록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로마서 8:13에서와 같다. 그때 사도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기독교를 얼마나 멀리까지 믿고 나갈 것인지, 성령께서 어떤 사람 안에서 역사하되 중생의 실제적인 역사에는 미치지 못하게 하심으로 그 사람이 배도하되 중생의 실제적인 역사에는 미치지 못하게 하심으로 그 사람이 배도하게 될는지, 그러한 일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도 "고범죄"(시 19:13)를 짓는 데까지 얼마나 가까이 가며, 또 그러면서도 어떻게 "큰 죄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하나님만이 결정하실 수 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지체 없이 주님께 복종하여 드리는 자세를 견지하는 동안에만 안전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육체에 빠지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자기를 크게 하는 길에서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그 길에서 끝까지 머물러 있으면 참으로 치명적인 상태가 될 것이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배도자들에게 떨어질 무서운 심판이 여기에 선언되어 있다. "율법 아래 있는 어떤 사람이 살인자나 음행자나 신성모독자와 같은 율법적으로 속함받을 제사가 없이, 극형을 피할 수 없이 당해야 할 죄를 지은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에게 그 율법의 선고가 집행되는 것을 무섭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사도는 이 문맥에서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의 논증을 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모세의 율법을 거스려 그렇게 범죄한 사람의 경우가 그러하다면, 복음을 거스려 그러한 죄를 범한 사람의 경우에는 얼마나 더욱 그러하겠는가? 그 사람의 죄는 비할 수 없이 더 크고, 그 심판 역시 더욱더 혹독할 것이다"(J. Owen).

9:27에서와 같이 배도자들에게 떨어질 하나님의 징벌은 "심판" 이라는 일반적인 용어를 통해 표현된다. 이 말은 그 심판이 그 배도자들의 무서운 범죄에 할당된 의로운 선고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공정한 법정적 심판을 위해서 완전하고 공개적인 재판이 열릴 것이다.

그 말은 역시 징벌 자체를 표현하는 곳에서도 사용된다(약 2:13; 벧후 2:3). 두 의미 다 여기에서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용서와 정죄 사이에는 중간 지대가 없다.

이 판단의 보좌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어떤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우리말 개역성경에는 "어떤 이라는 말 대신 '오직' 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 역자주).

여기에 "어떤"이라는 말은 온전히 규정하지 아니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 마치 "어떤 여자"(막 5:25), "어떤 귀인"(요 4:46) 등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그 말은 - "심판" 이 인간의 마음으로는 생각해 낼 수도 없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한다.

"무서운" 이라는 말은 그 심판이 너무나 무서워서 그것을 맛보게 될 때 공포와 아연질색으로 가득차게 됨을 지시한다. "기다린다"는 말은 배도자들은 이미 그들의 양심 속에 하나님의 진노의 인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소멸의 불", 또는 "불의 맹렬함".

문자 그대로 하면 "열렬한 불의".(Bagster의 원어 대조역 성경에서는 그렇게 번역한다). 이 말은 그들을 기다리는 "심판"의 '성질'을 보다더 자세히 묘사한다. 사용된 어휘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쉬지 않고 무섭게 내려 부어짐을 지시한다.

또한 그 진노의 무시무시한 맹렬함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배도자들에게 극히 화를 발하시며 생각할 수도 없고 묘사할 수도 없는 무서움으로 그들을 대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그의 무한한 공의와 거룩한 능력에 부합할 것이다.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사 66:15).

여기 우리가 다루는 구절에서 가리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마지막 날의 최종적 심판과 하나님의 원수들의 영원한 멸망이다. 추후 70년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칼과 무서운 심판이 떨어져 그들의 교회를 무너뜨리고 말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무서운 마지막날 심판의 엄숙하고 모형적인 예표이다.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아마 여기서는 나답과 아비후에게 떨어진 무서운 운명을 넌저시 암시하는 것 같다. 그들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대답한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2).

또한, 고라와 나단과 아비람에게 떨어진 심판을 연상케 한다.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 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래서 그들은 "음부에 산 채로 빠지게 되었다"(민 16:30-33).

"대적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원수들이요, 하나님은 그들의 원수임을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의 모든 행복을 살라 버라고, 그들의 모든 복락과 그들의 모든 소망과 위로와 남은 생명을 단번에 살라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존재를 없애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 불이 그들을 언제나 괴롭히며 태우지만 절대로 그들을 없애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J. Owen).

하나님의 은혜가 그러한 무서운 운명에서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를 바라나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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