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6]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6]

En Hakkore 2024. 5. 28. 16:13

하나님께 나아감 6(히 10:19-23)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지녀야 하는 자세이다.♥ 그저 거룩한 몸짓이나 입술로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신앙에 빠져 있을 때의 그런 예배를 결코 받지 아니하신다.

"참 마음"은 이중적이고 의심하고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아니하는 외식적 미음에 반대되는 말이다. "마음과 뜻을 연단하시고"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그 하나님과 대할 때 이중적인 마음을 전혀 가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내면적인 마음에서의 진실을 원한다. 그러므로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달라"(잠언 23:26)는 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첫번째 요구이다. 이 뜻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한 점이 있다면 결코 그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더 "참 마음" 이 필요하다.

진지하고 깨끗하고 정직한 소원과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분을 속일 수가 없다. 사람들의 귀를 위해서 꾸며진 아름다운 말이나 효과만을 위해서 감정적으로 흥분하여 열심을 부리는 것이 하나님께는 통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해야만 한다)"(요 4:24). 이 점은 외적으로만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정죄하는가. 또한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하는 대신, 그거 억지로 한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만족해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정죄하는가!

다윗과 같이 말할 수만 있다면, "전심으로 주께 구하였사오니".

"온전한 믿음으로".

이 말은 소극적으로 말하면 의심이나 유동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요, 적극적으로는 흔들리지 아니하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간다는 말이다. 그것은 내 자신이나 내 자신의 믿음을 견고하게 의뢰한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확실한 자격을 준 그리스도의 공로를 온전히 의지한다는 말이다.

"온전한 믿음" 이란 말은 마음이 나의 죄를 위해서 흘려진 그리스도의 피의 절대적 충분성을 의뢰하고 의지함을 가리킨다. 또한 현재 내 위치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계속 간구하는 그의 중보 기도의 효력을 온전히 의지한다는 말이다.

믿음은 나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려, 내 연약한 찬양이나 간구를 정결케 하고 그의 달콤한 향기로 향내나게 하시며(계 8:3,4),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열납되도록 하시는 대제사장을 바라본다.♥ 그러나 사단이 겁 많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막는 술책을 부리지 못하게 하라.

그가 "참 마음"이나 "온전한 믿음"을 갖지 않았다는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꺼리는 하나님의 자녀를 넘어뜨리지 못하게 하라. 만일 그러한 연약한 하나님의 자녀가 그러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에 대하여 분명한 의식을 가지지 못하면 그것들을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열심히 간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맑은 물로 씻었으니". 여기서 어떠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기에 합당한지에 대한 묘사를 듣는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거룩하게 하심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그 두 가지의 축복들을 옛 언약 아래서 상징적으로 예표했던 모형적 차원에서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유대교의 정결케 함과 피로써 "뿌려 주는" 일을 외적인 것에만 관련디는 것이지 양심을 온전케 할 수는 없었다(9:9).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는 고토앙하는 마음에 평강을 주고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악한 양심"은 죄책으로 송사받으며 용서받지 못한 죄 때문에 압제를 당하는 양심이다. 그 양심이 정결함을 입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피의 충분성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곧 성령께서 체험적으로 그 효력적인 공력을 적용시킴으로써 가능하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은즉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우리는 정죄감에서 벗어나게 되고, 고통당했던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한다.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이 상징적인 어법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들어갈 때 씻었던 것을 넌저시 가리킨다(출 29:4). 디도서 3:5에서 그 일에 대한 원형적인 성취가 정의되어 있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그러나 여기서 강조점은 신자의 매일 삶에 미치는 중생의 '외적' 효과들에 주어져 있다. 우리는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 모두 다 깨끗함을 입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위는 이러한 권면을 받는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성경에서는 몸을 거룩하게 하는 것을 강조하여 권하고 있다(롬 12:1; 고전 6:16, 20). 이 22절 전체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실제적인 측면을 가르치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양심을 깨끗케 하고 몸을 씻는 일이 중생할 때 겪는 그리스도인의 최초의 경험이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최초의 경험으로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정결케 될 필요가 있다. 매일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매일 용서를 받고 "모든 불의에서 정결케" 된다(요일 1:9).

불의한 양심은 여호와와 교제하는 데 있어서 참으로 큰 장애물이다. 마치 의식적인 불결이 유대인들에게 큰 장애물이었듯이 말이다. 그처럼 우리의 행실이 부단이 말씀의 물로 씻겨져야 한다(요 13장). 레위 제사장들은 그들의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러 들어갈 때마다 깨끗이 씻었을 뿐 아니라, 거룩한 성소로 들어갈 때마다 손과 발을 씻어야 했다(출 30:19, 20).

오늘날 바로 이 점에서 얼마나 슬픈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드리는 일이 얼마나 연약한가, 또한 하나님의 높고 거룩한 요구들을 얼마나 미미하게 실천에 옮기는가. 또한 사전 준비도 없이 하나님의 면전에 돌진하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 위하여 마땅한 준비가 우리에게 요구되며,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을 '새롭게' 우리 영혼에 적용시킬 것이 요구된다. 사도는 특별히 이 점을 가리켜 말한다. 그것이 없으면 공적 예배는 큰 해악이다.

그것이 없는 것마다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경외심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합당한 만족도 없고, 우리 영혼에 미치는 어떤 은혜도 기대할 수 없다"(J. Owen).♥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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