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3]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3]

En Hakkore 2024. 5. 28. 16:11

하나님께 나아감 3(히 10:19-23)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이 점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위해서 확보해 놓으신 말로 할 수 없는 특권들을 활용하고 이용하게끔 격려하고 부추기는 두 번째의 말씀이다. 이 구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은 신약의 특권들이 여기서는 구약적인 어법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타락한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높은 특권은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감을 얻는 것이다. 그가 거스린 주권자이신 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오직 유일한 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려졌다.

성막(성전)은 그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놀라운 모형이었다. 그러한 상징들을 암시하면서 여기서 그리스도를 상징적인 관점에서 우리 믿음에 적용시켜 말하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우리가 성소로 나아갈 때 들어가는 "문"이다. 아담이 범죄하자마자 하나님의 위엄에 나아갈 수 있는 문이 닫혀져서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이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룹들이 화영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지키고 있었다(창 3:24).

그러나 지금은 화영검이 보증자의 피로 말미암아 소멸되었으니(슥 13:7), 나아가는 문이 열려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지혜로써 자기가 추방했던 사람들을 다시 그 면전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길을 궁구해 내셨다(삼하 14:14). 곧 그리스도의 만족케 하심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기 위한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우리 믿음에 적용시켜 말하고 있다. 그를 "우리를 위해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 이라는 새롭고 상징적인 어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지성소에 나아감을' 얻었다고 말한 사도는 이제, 우리를 그리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길을 선언한다. 장막이 있을 때 지성소에 나아가는 오직 유일한 길은 피를 가지고 성소를 지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휘장을 제치고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구약의 모든 교회들은 이 길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형적으로 때가 되면 신자들이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길이 열려질 것임을 예표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은 그러한 길이 열리지 않아 있었다.

사도는 이 점을 묘사한다.
1) '그가 열어 놓으신' 길이 준비됨으로부터 그것을 묘사한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2) 그 길의 성질로부터 그것을 묘사한다. 그것은 '새롭고 산 길이다'.

3) 그것은 성향으로부터 그 점을 묘사한다. 그는 먼저 모형적으로 장막 아래 있던 옛 길에 대하여 표현함으로써 그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휘장' 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다.

셋째로, 그 모형을 해석한다. '곧 그의 육체'. 전체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때 믿음을 사용하는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J. Owen).

앞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늘이 열렸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리스도를 "사닥다리" 의 원형으로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창 28:12; 요 1:51). 다시 말하면 땅에 서서 하늘까지 미치는 사닥다리로 다시 한 번 표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국면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라고 표현되었다(요 14:6).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 인도하는 오직 유일한 진실된 "길" 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그 "길" 이 다양하게 언급된다.

"생명의 길"(잠 10:17). "거룩한 길"(사 35:8), "좋은 길"(렘 6:16), "평강의 길"(눅 1:79), "구원의 길"(행 16:17). 이 모든 표현들은 같은 것을 가리킨다. 곧 하늘에 이르는 오직 유일한 통로이신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은 이중적인 의미에서 그 "길" 이시다.

첫째는, 마음이 그 생각을 가장 우선적으로 차지하려는 다른 모든 대상으로 벗어나고, 자신의 모든 의를 포기하고 구세주만을 붙잡을 때의 의미에서 "길"이시다.

둘째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삼고 지체 없이 기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의 자취' 를 따라가려고 열심히 은혜를 구할 때 역시 그리스도는 "길" 이시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새롭고 산 길" 이라고 말한다. "새롭고" 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하면 "새로이 죽임당한" 이라는 말이다. 그 말의 어원적인 단순동사는 "옥시도(occido)라는 말인데 "죽이다" 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가 우리에게 열린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롭고" 라는 말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생각될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죽기 전에는 그 길이 전혀 존재치 않았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구약의 성도들은 바로 그 길을 따라서 하늘나라에 갔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길이 만들어지고 계시되고 사용된 차원에서 전적으로 "새롭다" 는 의미도 아니다. 그러면 어째서 그것을 "새로운" 것이라고 부르는가?

행위언약 아래 있던 옛 삶의 길과 구분하기 위해서요, 새 언약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금은 온전히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엡 3:5). 영원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낡아지지 않을 것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184

'강해시리즈 > 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Hebrews 6]  (0) 2024.05.28
[Hebrews 5]  (0) 2024.05.28
[Hebrews 4]  (0) 2024.05.28
[Hebrews 2]  (0) 2024.05.28
[Hebrews 1]  (0) 2024.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