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결론1[하나님의 주권 86] 본문

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결론1[하나님의 주권 86]

En Hakkore 2024. 5. 24. 17:13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요한계시록 19:6).

이 책의 제2판 서문에서, 진리의 균형을 유지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두 가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주권적이며, 인간은 책임이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전자에 대한 탐구를 전개했다. 그리고 다른 연구들에서 후자를 빈번하게 강조했다...

두 진리 가운데 한 쪽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다른 쪽을 무시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이점을 당연히 인정한다. 사실 역사 속에는 각각의 예가 무수히 많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책임을 소홀히 하면 방관적인 숙명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의 잠재력과 책임에만 집중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놓쳐 버리는 것은 피조물을 높이고 창조자를 낮추는 것이다. 거의 모든 교리적 오류는 진리를 왜곡하거나, 진리를 확대하거나, 진리를 그릇되게 쪼개거나, 진리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치우친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도 한 부분만 계속 자라고 나머지 부분들은 그대로 있다면 곧 추하고 보기 흉해질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보다도 균형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도 이와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기 담긴 지혜가 진정한 균형을 이룰 때 가장 아름답다.♡ 바로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이 실패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리가운데 한 면에 아주 깊이 감동되어 그 부분만 집중하고 나머지 부분은 거의 무시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한 부분으로 좋아하는 교리를 만들며, 이러한 교리는 한 그룹이나 운동의 뚜렷한 특징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할"(행 20:27) 의무가 있다.♡

우리는 타락한 시대를 살고 있으며, 사방에서 인간이 높아지고 초인(superman)이 흔한 표현이 되었다. 이런 시대에서 하나님이 주권자리는 영광스러운 사실을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분명한 진리를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시대에 이런 필요성은 더더욱 크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우리의 열정과 지식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하려면 큰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종은 "제 때의 양식"(눅 12:42, KJV 직역)이란 말을 늘 기억해야 한다. 한 교회에 필요한 것이 다른 교회에는 필요하지 않기도 한다.

전임 목회자가 알미니안주의자였던 교회를 사역하게 되었다면, 그 동안 경시되었던 진리, 곧 하나님의 주권을 특별히 가르쳐야 한다. 그렇더라도 어린아이에게 딱딱한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이지 않도록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6장 12절에서 하신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이와는 반대로 뚜렷이 칼빈주의적인 강단을 맡게 되었다면, 인간의 책임이라는 진리를 - 다양한 면에서 - 가르치는 게 유익할 것이다.

설교자는 회중이 듣고 싶은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을 전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가장 생소하거나 그들의 삶에서 가장 잘 나타나지 않는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방금 권한 내용을 실제로 실천한다면, 그런 목회자는 배반자라는 혐의를 자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인정하신다면 그게 무슨 문제겠는가?

목회자의 소명은 인기 있는 주제를 가르쳐 신임을 얻는 게 아니며, 인간이 만든 규범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목회자의 소명은 성경과 일치된 사역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의 각 부분은 나머지 부분과 균형을 이룬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으며, 하나님의 성품도 그렇다.

하나님은 '빛'일 뿐 아니라(요일 1:5 참조), '사랑'이시다(요일 4:8 참조).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롬 11:22)고 말한다.

늘 한 면만 전하고 다른 면을 배제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부정확하게 그려내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 되셨을 때 "종의 형체"(빌 2:7)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럼에도 구유에 계신 그분은 "그리스도 주"(눅 2:11)이셨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 19:26 참조).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신다"(딛 1:2 KJV 직역, "거짓이 없으신"-한글개혁개정).

성경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갈 6:2)고 말하지만, 같은 장에서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5)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고 명하지만, 이렇게도 말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그리스도의 양은 하나도 멸망치 않는다(요 10:28-29 참조).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고 명한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이것들은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다시 말해, 서로 균형을 잡아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뿐 아니라 인간의 책임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자녀도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제 몇 가지를 되짚어 보면서 우리의 논의를 마무리해야겠다.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나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대하 20:5-6).

그렇다. 주는 하나님이시며, 지존하신 위엄과 능력으로 다스리신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인간의 계몽과 진보에 대한 자랑으로 넘치는 시대에,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부정한다.

물질주의 과학과 무신론 철학이 하나님을 그분이 창조한 세계에서 몰아냈으며, 비인격적인 자연법칙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여긴다. 현대 미국 문화에서는, 하나님은 아주 멀리 계신 구경꾼으로, 도울 힘이 없는 구경꾼으로 여긴다.

마치 하나님이 나라들 간의 전쟁을 중지시키고 싶어도 그럴 힘이 없는 것 같다. 역대상 5장 22절과 역대하 24장 24절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지배적인 믿음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가도록 두어야 하고 인간에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 없어진다.' 이것이 이 시대의 인기 있는 교리이다.

따라서 이런 교리가 몇몇 현혹된 신학자들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신학교가 이런 교리를 가르치고, 많은 목회자가 강단에서 이런 교리를 전하며,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이 이런 교리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364

'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론3[하나님의 주권 88]  (0) 2024.05.24
결론2[하나님의 주권 87]  (0) 2024.05.24
[하나님의 주권 85]  (0) 2024.05.24
[하나님의 주권 84]  (0) 2024.05.24
[하나님의 주권 83]  (0) 2024.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