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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46]

En Hakkore 2024. 5. 21. 18:04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3).

오늘날 타락한 인간의 의지의 본성과 능력에 관해서 큰 혼란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중에도 이 부분에서 아주 잘못된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교회가 가르치는 대중적 개념은 이것이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으며, 따라서 구원은 죄인의 의지와 성령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의 자유의지-인간이 선을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능력-를 부정했다기는 여지없이 미움을 산다.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믿는다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운털이 박힌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히 말한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우리는 누구를 믿을 것인가? 하나님인가 목사인가.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맞다. 여호수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 문장의 나머지 부분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 "너희 조상들이 강 서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수 24:15).

왜 성경과 성경을 대립시키려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선언한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롬 3:11).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에게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맞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분에게 나오지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영접했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누구였는가? 요한복음 1장 12~13절은 이렇게 말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러나 성경은 "원하는(will, 의지가 있는)자는 누구든지 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지만 이 말이 오려는 의지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뜻인가? 오히려 의지가 없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오라.'는 말은 타락한 인간이(스스로)올 능력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마치 '네 손을 내밀라.'는 말씀이 손 마른 사람이(스스로) 순종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 아닌 것과 같다. 자연인은 스스로 그리스도를 거부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스스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능력은 없다. 왜 그런가? 자연인은 그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 되기 때문이며(롬 8:7 참조), 마음으로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이다(요 15:18 참조).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선택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거룩하고 영적인 것을 선택하거나 더 좋아하려면, 먼저 새 본성을 받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거듭나야 한다.

성령께서는 인간으로 자기 죄와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실 때 인간의 적대감을 극복하지 않으시는가? 그리고 성령께서는 멸망하는 많은 사람도 똑같이 죄를 깨닫게 하지 않으시는가? 이런 말은 혼란을 보여준다.

한 인간의 적대감이 실제로 극복되었다면, 그 사람은 쉽사리 그리스도께로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구주 앞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적대감이 극복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말씀 전파를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시는데도 많은 사람이 불신앙 가운데 죽는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불택자들 속에서는 하시지 않은 일을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 속에서는 하시는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는 택자들 속에서 일하면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그들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빌 2:13).

알미니안 교리는 우리가 앞서 한 말에 이렇게 대응할 것이다. "아니다, 성령께서는 회심한 자들과 회심하지 않은 자들로 똑같이 죄를 깨닫게 하신다. 단지 성령의 노력에 굴복하느냐 저항하느냐에 따라 두 그룹이 나눠질 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성령의 협력을 자랑하고 스스로 영광을 취할 근거를 갖게 된다. 그러나 에베소서 2장 8절과 완전히 모순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리스도인의 실제 경험에 비춰 보자. 그대가 그리스도께 오지 않으려 했던 때가 있지 않았는가? 그 후에, 그대는 그리스도께 나왔다. 그대는 이것에 대해 모든 영광을 그분께 돌릴 준비가 되었는가?(시 115:1 참조)♡

그대가 그리스도께 나온 것은 성령께서 그대를 '부정적 의지'에서 '긍정적 의지'로 옮기셨기 때문임을 인정하지 않은가? 성령께서 그대 속에서 하신 일을 많은 사람 속에서 하지는 않으셨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많은 사람도 복음을 들었고 자신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깨달았으나 여전히 그리스도께 나오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성령께서 그들보다 그대 속에서 더 많이 일하셨다.♡

그대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 큰 문제가 제게 제시되었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제 기억에 따르면, 제 의지가 작동했으며, 저를 향한 그리스도의 주장에 제가 복종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대가 복종하기 전에, 성령께서 그대의 마음에서 하나님에 대한 보능적인 적대감을 제거하셨다.♡

그러나 성령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 이러한 적대감을 제거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적대감이 제거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인가? 성령께서 그 마음에 자신의 전능한 능력을 나타내고 은혜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까지 그 누구도 자신의 적대감이 제거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물어보자. 인간의 의지(will, 뜻)란 무엇인가? 인간의 의지는 자기결정 능력이 있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인간의 의지는 주인인가? 아니면 종인가? 의지는 인간의 나머지 모든 기능보다 우월하여 그것들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나머지 모든 기능의 자극으로 움직이며, 따라서 그것들에 종속되는가?

의지가 지성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지성이 의지를 지배하는가? 의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자유가 있는가? 아니면 자신 밖의 그 무엇에 필연적으로 복종해야 하는가? 영혼, 즉 인간 속에 있는 인간은 인간을 되돌려 자신에게로 돌진하여 자신을 유리뱀처럼 산산조각 내게 할 수 있다.

의지는 이러한 영혼의 나머지 큰 기능들이나 능력들로부터 독립적인가? 아니면 뱀의 꼬리가 몸통과 연결되어 있고 다시 머리와 연결되어 있어, 머리가 가는 곳에 온몸이 가듯이,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듯이, 의지도 다른 가능성과 연결되어 있는가?

생각이 먼저이며, 그다음이 마음(바람이나 혐오감)이고, 그다음이 행동이다. 이것이 맞는가? 즉, 개가 꼬리를 흔드는가? 아니면, 의지, 즉 꼬리가 개를 흔드는가? 인간에 의지가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가장 마지막인가?

다시 말해 의지는 종속적임며, 의지의 자리는 나머지 모든 기능보다 아래인가? 이것이 도덕적 행위와 참된 철학이며 창세기 3장 6절이 말하는 과정인가?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감각의 지각, 지성!)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감성)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의지)."(George S. Bishop).

이것은 학문적 관심사를 넘어서는 물음이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중요한 물음이다. 우리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교리적 건전성을 가늠하는 근본 테스트라고 단언하며, 이러한 우리의 믿음이 절대 지나치지 않다고 믿는다.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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