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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45]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45]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En Hakkore 2024. 5. 20. 11:28

"일곱 번째에 제사장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수 6:16).

여기서 언제 그 약속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는지를 주목하기 바란다. 그들이 완전히 임무에 돌입한 후에, 그들의 순종과 인내가 극심하게 시험받고 난 후에, 이스라엘이 그 성을 여섯 번이나 돌기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그 성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진다.

우리가 약속들만 너무 마음에 담고, 혹은 그 약속에 함께 덧붙여진 명령들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음을 여기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설교자들과 저술가들이 바로 이 점에서 균형을 잃는 안타까운 모습을 본다. 위로를 주는 본문들만을 주변의 문맥에서 떼어내고, 거기에 단서로 붙어 있는 조건들을 빼버리고, 약속들만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위로하는 것을 강단의 목표로 삼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우리의 삶속에서 "착한 행실"(마 5:16)을 드러내고 "열매를 많이"(요 15:6) 맺는 것이야말로 아버지를 가장 영화롭게 한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전에는 그들에게 철저히 침묵을 지키라고 명령했었다(10절). 그들 자신의 오만한 즐거움으로 소리를 질러서는 안 되고, 오로지 지도자가 명령할 때에 그 명령에 따라서만 외쳐야 했다. 그의 명령에 완전히 복종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큰 소리로 외칠 때가 왔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승리가 확실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나중의 명령은 그저 그들의 사기를 시험하는 것일 뿐이었으나, 힘을 다해 한 목소리로 외치라는 이 명령은 그들의 믿음과 순종을 진짜로 시험하는 것이었다.

거대한 여리고 성벽이 여전히 그들의 앞에 우뚝 서 있는 상태에서 그런 명령을 받았으니 말이다. 승리를 얻은 후에 외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그 명령이 주어졌다. 그러니 그 외침은 승리를 믿는 믿음의 외침이었다.

이는 발람이 예언적으로 선언했던 대로였다. 그는 감동을 받아 이스라엘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 바 있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중에 있도다"(민 23:21).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주었음이니라"(수 6:17).

이는 그 당시에 일어난 일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 준다. 라합과 그의 가족외에 여리고 성 내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죽었다. 우상 숭배자들이요 사악한 자들이었던 그들이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졌다. 즉 멸망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영광스러운 찬송이 되도록 구별되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

과연 그렇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택의 목적에 따라서 사람들을 구별하셨다. 그러나 이 사람이 "구원을 받게"(살후 2:13) 되도록 택함 받았고, 혹은 저 사람이 "옛적부터 이 판결을[정죄를] 받기로 미리 기록되었다"(유 1:4)해도, 둘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자들이다.

전자의 경우는 하나님이 그분의 긍휼의 풍성하심을 드러내시고, 후자의 경우는 그분의 거룩하심의 순결함과 그분의 의로우심의 엄정함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불타오르는 혐오와 그에게 저주받은 모든 자에 대해 보응을 시행하시는 그분의 권능이 여기 여리고에서 준엄하게 드러난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