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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42]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42]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En Hakkore 2024. 5. 20. 11:26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수 6:13).

"나팔"을 뜻하는 히브리어 "쇼파르"는 출애굽기 19:16, 19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그 큰 소리를 통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움에 싸이게 했다. 하지만 여기 여호수아 6장에서 그것이 열네 차례(7*2, 혹은 완전한 증인의 숫자)나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의미심장하다.

거기서 스무 차례나 "희년"으로 번역되므로, 이 단어는 "양각 나팔"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희년 나팔"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희년에는 모든 종이 해방되어 자유를 얻으며, 또한 모든 소외되었던 재산이 본래의 소유주에게로 회복되었다.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레 25:10, 13, 27, 28)와 "자기와 소유지"(27절)라는 표현이 자주 반복되는 것에 비추어 볼 때에, 이제 이스라엘이 그들의 기업을 소유하기 시작하는 때에 "희년 나팔"을 부는 것이 매우 적절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제사장들의 "양각 나팔"의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와 목적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종들에게 지정해 주신 그 이중적인 사역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암시를 보게 된다. 그 나팔들은 가나안 족속과 이스라엘 모두를 향해 사명과 사역이 있었다.

곧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을 주고, 이스라엘에게는 위로를 주고 사기를 드높이는 것이 그것이었다.

복음 사역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분의 율법의 요구들, 죄의 죄악성, 그리고 끔찍한 죄의 삯의 실체를 신실하게 선포함으로써, 불경한 자들의 마음에 공포를 불러일으키고(고후 5:10),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고 강권해야 한다.

악한 행실을 버리고 복음을 믿었다는 증거를 보이는 자들을 위해 값주고 사신 그 영광스러운 기업의 본질을 선포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강건하게 하고 그들의 마음에 용기를 주는 것이야말로 그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다시 말해서, 큰 희년의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요, 그리하여 구원 받은 자들이 확신과 기쁨을 현재의 소유로 누리도록 한다. 서신서들에서 바로 그 복음의 복된 내용들이 가장 충만하게 성도에게 펼쳐지는 것이다.

문맥을 조심스럽게 읽어보면 여호수아에게는 주께서 여리고를 그의 손에 주셨다는 신적인 확신이 있었으나, 제사장들이나 백성들, 혹은 용사들에게 명령을 줄 때에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모두가 세상이 쓰는 말처럼 "눈먼 복종"으로 행해야 했다. 결과에 대한 그 어떠한 약속도 없이 말이다.

여호수아는 며칠 동안 몇 회나 원수의 성을 돌아야 그 성벽이 초자연적으로 붕괴될 것인지를 하나님께로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수 6:3-5), 이를 자기만 알고 그의 휘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알려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이상스런 방식과 절차가 얼마나 오래 계속되어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 정보가 없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이때에 더 큰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여호와의 거룩한 언약궤를 중간에 높이 지고서 그 성을 한 번 완전히 돈 후에, 이스라엘의 온 무리가 아무런 손에 잡히는 결과도 없이 그냥 진으로 돌아와야 했으니, 똑같은 일을 두 번씩 반복한 것은 그들 편에서 아주 대견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대신하여 일하신다는 최소한의 증표도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는 14절의 증언이 얼마나 놀라운가! 여리고 성을 두 번째와 세 번째 돌았는데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무것도 없었으니, 그 백성이 불평하면서, "이 일을 지루하게 계속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불평한다 해도 전혀 무리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들의 인내가 참으로 훌륭했다.

이 세대의 모습은 광야를 방황했던 그들의 선조들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지 모른다! 그들은 지도자에 대해 얼마나 속히 실망하며 투덜거렸는지 모른다! 그러니 자기들의 기업을 절대로 소유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들의 자녀들은 여호수아에게 맹세했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수 1:16).

그리고 그들이 말한 대로 성실하게 지켰다. 이 역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격려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