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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41]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41]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En Hakkore 2024. 5. 20. 11:26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수 6:11).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가?
여리고 성이 단 번에 무너졌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수 6:11).

그의 모든 수고가 허사였을까? 아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고, 전에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요, 이는 그릇된 결론이다. 많은 일이 일어났다. 최고로 중요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존귀와 영광을 받으신 것이다! 어떻게? 여호수아와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온 회중의 전폭적인 순종을 통해서! 👍
오오, 우리의 순종만큼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사역자들과 평신도들이 더 철저하게 깨닫기를 소원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아무리 화려한 헌물을 드린다 해도, 드리는 사람의 뜻이 하나님께 굴복해 있지 않다면 그가 받지 않으신다.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고, 주의 대의를 위하여 자비롭게 헌금하고, 소위 "그리스도인의 봉사"에 우리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해도, 하나님의 계명을 좇는 길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이 무가치한 것이요 외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공적인 하나님의 종들과 사사로운 그리스도인이 지금까지 말씀한 내용을 마음에 담지 않는다면, 이 사건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들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가장 존귀하게 하는 설교자는 눈에 보이는 가장 큰 효과를 산출하는 자가 아니라, 주의 명령을 가장 가까이 준수하며 말씀을 가장 신실하게 전하는 자이다.🌱

성도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에서와 부엌에서 가사 일을 돌보며 하나님이 주신 임무들을 성실히 수행하는 그리스도인 주부가, 해외의 복음 전선에서 자기를 부인하며 일하는 신실한 선교사와 똑같이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고 그 분을 높이는 것이다.

구주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서 성령께서 다른 무엇보다도 더 강조하신 한 가지 훌륭하신 점은 무엇인가?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 행하기를 양식으로 삼으신 것이 아닐까!(요 4:34).

아버지의 권세에 복종하는 데에는 한계가 없었다. 그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그에게 복종하신 것이다!(빌 2:8).

여기서 이스라엘이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는 그들의 순종을 높이 우러러보며, 그들을 본받기를 힘쓰기 바란다.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수 6:12).

우리가 모든 것을 직고해야만 하는 그 분의 눈은 모든 것을 다 보시므로 아무것도 피할 수가 없다. 인간의 생각에 이것은 별 의미 없는 극히 사소한 일처럼 보이는데, 성령께서는 이것을 주목하시고 썩어지지 않는 기록 속에 남겨두기를 기뻐하셨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이 주님의 종들의 부지런함과 충성과 열정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주의 종들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는 명령을 받는다.

주님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막 1:35) 일어나셨고,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사 사람들을 가르치셨으니"(요 8:2), 그분의 종들이라 주장하는 자들이 게으름과 태만을 보인다는 것은 합당치 않다.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마 5:4)라는 주님의 날카로운 질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적용될 수 있고, 특히 설교자에게 적용될 것이다. 과연 설교자가 하루에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과연 일용할 양식을 위해 일하는 자들보다 더 많은가? 아니면 적은가?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