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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38]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38] 여리고성에서 얻은 승리(수 6:1-27)

En Hakkore 2024. 5. 20. 11:24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사역자들을 자랑하고 있었다(고전 1:12; 3:4).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이에 대해 쐐기를 박는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바울이나 아볼로나 땅의 벌레 같은 사람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고전 1:30).

이렇게 해서 바울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복음을 들은 것이 학식 있는 철학자들이나 고도로 훈련받은 학자들을 통해 된 것이 아니라, 멸시받는 미천한 자들을 통해 된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확증이 더 필요하다면, 31절이 채워준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귀에 대한 질투가 크시므로 그것을 다른 어느 누구와도 나누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번쩍이는 업적이 전혀 없는 자들을 평범하고 단순하고 미천한 사람들을 그분의 도구로 택하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가장 크게 쓰시는 도구는 은반의 혀를 지닌 웅변가들이 아니라, "양각 나팔"을 닮은 모습 이외에는 듣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자들이다!

가장 훌륭한 그분의 종들은 왕족 출신도, 귀족 출신도, 지체 높은 가문 출신도 아니고, 낮은 계급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이었다.

저 위대한 종교개혁에서 주요 일꾼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루터(Martin Luther)는 광주의 아들이었다. 번연(John Bunyan)은 땜쟁이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의 책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이 학식 있는 오웬(John Owen)과 굿윈(Thomas Goodwin)의 저작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고 널리 배포되었다.

스펄젼(Charles Spurgeon)은 대학교육도 받은 적이 없고, 신학교를 졸업한 일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역을 위해 부르신 후 이들은 열심히 공부했고 오랜 기간 자기를 갈고 닦았다.

교회들이 교육과 신학적 학식을 우상으로 삼는 일에 열심을 낼수록 그 교회들의 사역은 영적으로 메말라지는 법이다. 아무리 듣기에 거북해도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첫째, 다음으로 8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곧 일곱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 나팔을 메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을 그들이 언약궤보다 앞서서 행진했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하지만 여기에 당연한 말이 불필요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결론을 그대로 묵인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런 의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문구 바로 다음에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라는 표현이 반복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나아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그저 순전히 역사적인 세부 사항보다는 훨씬 더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그저 역사적인 세부적 사실에 불과하다면, 오늘날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이고, 그러니 이를 자기들 자신에게 적용시키고자 성경 전체를 탐색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관찰하여 마음에 새겨야 할 지극히 중요하고도 복된 무언가가 있다. 이 간략한 진술은 제사장들의 내적인 상태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곧 여호와를 향한 그들의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요, 진리의 성령께서 바로 그것을 기록하기를 기뻐하신 것이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었고, 그에 따라서 처신한 것이다. 성경과 성경을 조심스럽게 비교해 보면 이 문구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가 있다.

창세기 5:24에서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보도한다. 사무엘상 2:21은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고 말씀한다. 신명기 13:4에서는 이스라엘에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뒤)를 따르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골로새서 2:6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한다.

이 네 본문에 나타나는 전치사들에서, 성도가 하나님과 관계에서 누리는 특권과 의무의 개요를 볼 수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그와 이미 화목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는가?(암 3:3).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나타낸다. "여호와 앞에서 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이 면밀히 살피신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처신한다는 뜻이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잠 5:21).

그러므로 이는 거룩한 두려움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여호와의 뒤를 따라 행한다"는 것은 그가 계시하신 뜻에 전적으로 굴복하여 산다는 뜻이다.🌱 아멘.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312